“지역 참전용사 수소문 … 불고기 파티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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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행사 당일 진씨 가족과 참전용사 가족이 찍은 기념사진. 양쪽 맨 끝은 참전용사 제이 포트너 부부이며 가운데 세 명이 진 교수의 부인 강신희, 아들 솔, 딸 달래씨다(왼쪽부터). 진구섭 교수는 이번 행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도 한사코 반대해 함께 사진을 찍지 않았다.

진구섭(52·맥퍼슨대 사회학과)·강신희(51·테이버 칼리지 미대) 교수 부부가 미국 캔자스주 인구 1만3000여 명의 맥퍼슨 시에 정착한 것은 2003년. 진 교수 가족 4명이 이곳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강 교수는 정착 1년 뒤 현지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었는데, 노인 한 명이 찾아왔다. “한국인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미군 식당에서 일하던 김씨 성의 소년을 찾을 수 없겠느냐. 그는 내 친동생과 같았다.” 이 작은 도시에도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진 교수 부부는 “언젠가 이 분들에게 집 뒷마당에서 불고기라도 구워 드리면서 희생에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차근차근 계획도 세우고 비용을 저축했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참전용사 한 명이 지난해 숨졌다. 1950년 장진호 전투의 다리 부상으로 평생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그를 지켜봤던 진씨 부부는 더 이상 늦기 전에, 6·25전쟁 60주년인 2010년엔 반드시 감사의 자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캔자스주 당국에 가서 참전용사 자료를 요청했지만 사생활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참전용사들을 한 명씩 개별 접촉했다. 한 사람으로부터 기억하고 있는 다른 참전용사의 이름을 알아낸 뒤 전화번호부를 뒤져 주소를 찾아냈다. 약 6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맥퍼슨시 인근에 살고 있는 75명의 참전용사 명단을 만들 수 있었다. 부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내 대도시 젊은이들이 징집을 피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순박한 이곳 사람들은 조국의 부름에 따라 참전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한국의 현충일인 지난 6일 진씨 부부는 맥퍼슨시 해외참전용사 회관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51명과 그들의 부인·자녀 등 모두 105명을 초청해 6년간의 꿈이었던 ‘한국전 기념행사’를 열었다. 불고기와 잡채, 볶음밥과 만두 등 정성스레 만든 한식을 대접하고, 간단한 기념식도 열었다.

진 교수는 학회 참석차 갔던 LA의 한국문화원에서 한국문화와 역사에 대한 책자를 얻어왔다. 강 교수의 홍대 미대 디자인과 78학번 친구 15명은 한국 전통부채·복주머니·태극기 등을 보내왔다. 진 교수 부부의 딸 달래(21)와 아들 솔(18)이 선물 꾸러미를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했다. “미 중서부 지역 할아버지들은 감정 표현이 적은 편인데, 이날은 대부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 가족의 손을 잡았다”고 강씨는 말했다.

진 교수 가족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참전용사 제이 포트너(79)는 “나와 내 전우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전용사 앤더슨 도널드(82)는 “서울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니 우리의 싸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겠다”고 말했다. 탐 브라운 맥퍼슨 시장이 “장진호, 운산, 인천…”등등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의 지명을 부르자 몇몇 참전용사는 어깨를 들먹이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북한 상공에서 격추당해 실종된 세실 브랜드스테드의 형수 베티는 진 교수 부부에게 “너무나 인상적이었으며, 초대받아 영광이었다”는 감사 편지를 보냈다.

강 교수는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분들과 희생된 분의 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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