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여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인제(얼굴) 후보가 경선 사퇴 결심을 굳힌 것은 17일 아침 긴급 소집된 참모회의에서다. 김기재(金杞載)·원유철(元裕哲)·이희규(熙圭)·전용학(田溶鶴)의원 등 측근들과의 조찬 모임에서 후보는 "더 이상 경선을 끌고 가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꿈을 접겠다"고 말했다.

경선 포기는 그 동안 후보 캠프에서 산발적으로 거론됐다. 특히 전남 경선(14일) 이후 노무현(武鉉)후보와의 표 차가 벌어지면서 일부 의원이 사퇴를 건의했다.

그러다 15~16일 다음 경선이 치러지는 경기(21일)지역을 다니면서 역전의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16회의 시·도별 경선 중 13개 지역 경선이 끝난 현재 그는 후보에게 1천5백여표 차로 뒤지고 있다. 남은 부산·경기·서울 지역의 판세도 결코 후보에게 유리하지 않다.

특히 초대 민선 지사를 지내 '정치적 고향'으로 여기는 경기에서 후보가 패배할 경우의 정치적 타격을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 측근은 "경기 대의원의 60%가 호남 출신인데, 패배하면 후보가 경기도민에게 버림받았다는 여론이 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이 재등장한 '4·15 보각(補閣)'이 후보의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얘기가 주변에서 나왔다.

"현 정권에 대해 깊은 배신감과 불만을 갖고 있는 후보로선 朴실장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한 마당에 더 이상 들러리 경선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후보가 사퇴 선언을 하면서도 끝내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후보는 당분간 정국 변화 추이를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과 관련된 행보는 자제하되 자신이 제기한 '중도 개혁 노선'의 지지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암중모색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방선거를 전후해 정치판이 세차게 요동치는 시기가 오면 자신이 움직일 공간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