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불운 떨쳐낸 금빛 발차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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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문대성은

생년월일:1976년 9월 3일

체 격:1m90㎝·91㎏

경 력:서울리라공고-동아대-

삼성에스원-국군체육부대

수 상:99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 2000년 아시아선수권 1위

주 특 기:나래차기·뒤차기

2000년 4월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헤비급 국가대표 재선발전. 문대성(26·국군체육부대)과 김경훈(27·삼성에스원)이 대결을 펼쳤다.

당시 헤비급 대표였던 '태권도 제왕' 김제경(33)은 허벅지 부상에서 회복이 되지 않자 "후배에게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을 물려주겠다"며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당연히 후임은 선발전에서 김제경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문대성의 몫. 그러나 협회는 갑자기 3위 김경훈과의 재대결을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문대성은 2-3으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아직도 왜 협회가 그때 재대결을 결정했는지 잘 납득이 안 돼요. 하지만 2년이나 지난 일이고…. 게다가 경훈이 형이 금메달도 땄으니 모두 잘 된 일이잖아요."

과묵함, 그리고 진솔함. 문대성에겐 그런 것이 짙게 배어 있다. 다소 억울하지만,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것. 그런 걸 내공이라고 하는 걸까.

문대성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이달초 열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헤비급 1위에 올라 오는 9월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된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조그마한 고기잡이배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는 문대성이 초등학교 시절 충돌사고를 냈고, 사고 수습에 큰 돈이 들어가며 집안은 급격히 쇠락했다. 인천시 구월동 재개발지역, 10여평의 방 두칸짜리 다세대주택에 부모님과 7남매 등 9명이 얽혀 살아간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위로 누나만 4명, 다섯째였지만 문대성은 겨울이면 인근 산에 올라가 땔감을 준비해야 하는 장남이었다.

태권도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동은 곧잘 했다. 6학년부턴 선수로 나섰다. 인천 구월중을 거쳐 태권도 명문인 서울 리라공고로 진학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살 아래 남동생이 대들었다. "장남이라고 서울까지 보내서 운동시키는데, 왜 형은 운동도 안하고 빈둥대는 거야."

동생의 뺨을 세게 올려붙였다. 그러나 뒷머리를 둔탁한 무엇인가에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동생의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후 문대성은 악착같이 운동했다. 키도 쑥쑥 커서 동아대에 진학할 땐 1m90㎝까지 자랐고 몸무게도 늘어나며 헤비급으로 체급도 올렸다. 그런데 헤비급엔 김제경이 떡 버티고 있어 그는 늘 '2인자'에 불과했다.

"제경이형한테 태권도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태권도는 무도(武道)인 만큼 기술보다 정신이 먼저입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 일상생활 등 자기관리죠. 2인자였지만 이만큼 성장한 것도 제경이형 덕분입니다."

그는 모든 공을 주위 사람들에게 돌렸다. 문대성의 현재 신분은 육군 일병. "국군체육부대에 들어와 내성적인 성격도 좀 달라졌고 경기 스타일도 공격적으로 변화됐어요. 차등점수제가 도입돼 공격적인 플레이가 높게 평가되는 이번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인덕(人德)은 이렇게 쌓이는 걸까.20대의 패기와 진중함.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태권도 최고 고수 자리에 서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글=최민우,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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