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한국경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경제 전문가들에게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비중있는 경제 셋만 꼽으라고 하면 선진국 중에서 미국경제, 저소득 개발도상국 중에서 중국 경제, 그리고 고소득 신흥공업국 중에서 한국 경제를 꼽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위시한 세계경제 전체가 상당한 침체를 면하지 못했던 지난해에도 우리 경제는 3%에 달하는 성장을 이룩해냈다. 반면 우리와 함께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고 불리던 대만·홍콩·싱가포르의 경제는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게 돼 우리 경제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외국에 나가면 한국 경제에 대한 칭찬의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정말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칭찬의 소리를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칭찬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는 북미·유럽·아태지역 각계 지도자급 인사들이 모이는 '삼각회의'와 한국과 미국의 각계 지도급 인사들이 모이는 '한·미 21세기 위원회'의 연례회의가 개최됐다. 삼각회의에서 만났던 많은 유럽 인사로부터 한국 경제에 대한 칭찬의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들의 칭찬 속에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금융위기를 맞았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하고 있다는 정도의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사가 한국 경제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두 단계나 상향조정한 바 있지만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신용등급에 이르려면 아직도 상당 기간 더 기다려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반면 '한·미 21세기 위원회'에 참석한 일부 미국의 한국 경제 전문가들은 비판적 시각에서 한국 경제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지속된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금융부문 통계의 투명성이나 기업지배구조의 현황에 대한 그들의 비판적 시각은 그들의 평가기준을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권위있는 외국 경제전문지들을 보면 한국 경제가 내수 위주로 회복되고 있는 것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 실제 우리 경제가 수출과 기업 설비투자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3%대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소비가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6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GDP 성장률을 앞서는 4.1% 성장해 건설투자와 함께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동안 지속된 저금리와 가계신용의 충분한 공급, 그리고 특소세 인하 등 탄력적인 재정·금융정책에 힘입은 바 컸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문제는 민간소비를 주축으로 하는 내수 위주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데에 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소비의 지속적 증가는 결국 국제수지 적자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민간소비의 지속적 증가를 뒷받침하는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공급 또한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계속 늘어나는 가계 부채(지난 한 해 동안 28% 증가) 또한 적정수준을 초과하면 많은 가계의 부실을 가져올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 경제의 회복과 함께 수출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기업설비 투자 또한 늘어나게 되면 우리 경제는 지난해 4분기 연율 6%대의 성장세에 더 가속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선제적 경기조절을 위한 재정·금융 정책의 조율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와 아울러 아직도 남아 있는 일부 부실기업·금융기관의 처리와 은행 및 주요 정부투자기관의 민영화 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할 뿐 아니라 기업파산 관련법들의 통합·제정 등을 포함하는 미래지향적 제도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남들이 선진국의 잣대에 비춰 칭찬하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는 경제를 하루속히 창출해 내는 일임을 잊지 말자.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