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메가뱅크도 좋지만 창구 기강부터 챙겨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정부와 은행에서 모두 일해 본 한 금융인이 ‘메가뱅크론’에 대해 내놓은 답이다. 국내 금융계 종사자들의 능력, 그리고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이 갖춰졌다면 대형화를 추구해 볼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것을 계기로 메가뱅크론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경제 규모 세계 14위 정도인 우리나라도 세계 50위권 안에 드는 대형 은행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런 거창한 얘기들이 오가는 동안 우리의 은행 현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 우리금융지주의 계열사인 경남은행에선 부장급 간부가 2008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4400억원의 허위 지급보증을 했다 적발됐다. 이 간부는 은행의 법인 인감을 도용하고 문서를 위조하기까지 했지만 은행 측은 이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우리금융의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황영기·박해춘 행장 시절인 2002~2008년 여러 건의 PF에 4조2000억원의 지급보증을 했다 2900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지급보증 규모가 컸지만 여신협의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신탁사업본부 자체에서 지급보증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PF 대출 손실에 관련된 우리은행 직원 2명은 지급보증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신한은행 원주지점에선 6개월 새 두 건의 금융사고가 일어났다. 지점장은 200억원 규모의 고객 돈을 빼돌렸고, 금고를 관리하는 직원은 지점 금고에서 3억여원을 마음대로 꺼내 쓴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초엔 국제 망신까지 당했다. 외환은행 오사카지점은 지난 1월 현지 폭력조직의 돈세탁에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나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일부에선 사람이 많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고와 부실은 모두 은행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사람의 문제를 시스템도 막지 못했으니 사람과 시스템 모두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메가뱅크가 나왔다고 치자. 경량급 몸집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내부 통제를 커진 뒤 잘할 수 있을까. 되레 금융사고의 규모만 메가톤급으로 커지는 건 아닐까. 대형화도 필요한 과제이긴 하다. 하지만 기본을 제대로 갖추는 게 먼저다.

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