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키워주던 거대한 석불 어디에… 할말 잃은 아프간 조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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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바미안(아프가니스탄) AP=연합] "이곳에 다시 오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지난 9일 아프가니스탄 바미안의 황량한 계곡.

높이 치솟은 사암 절벽을 바라보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조각가 아마눌라 하이데르자드(62)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지난해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 재건작업에 착수하려는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의 요청으로 23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눈 앞엔 조각가의 꿈을 키워 주었던 거대한 석불 대신 돌 파편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는 1979년 소련이 침공했을 때 미국으로 도피했었다.

바미안 불상은 소련의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도 손상없이 버텨냈지만 지난해 탈레반 정권은 "인간 모습을 한 상(像)과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법에 위배된다"며 이들을 가차없이 파괴해 버렸다.

3세기와 5세기에 바미안시 중심부의 산허리에 조각된 두개의 불상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큰 것은 높이 5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입상이며, 작은 것도 높이가 35m에 이른다.

국제사회는 지난해 바미안 석불을 파괴키로 한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결정에 강력 반발했으나 탈레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상을 제거하기 위해 몇주 동안 대공포·로켓포 등을 동원하기도 했던 탈레반군은 지난해 3월 바위에 구멍을 파고 폭발물을 설치, 마침내 석상을 폭파했다.

하이데르자드는 뉴욕에서 TV로 폭파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매우 슬픈 날이었다. 그들은 이 불상들이 탈레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불상들은 아프가니스탄, 아니 인류역사의 한 부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카불의 인터컨티넨탈 호에 전시 중인 바미안 석불의 축소모형도 만들었는데, 이 모형도 탈레반에 의해 일부가 훼손된 상태다.

하이데르자드는 "아프가니스탄 당국이 탈레반의 야만성을 증언하기 위해 작은 불상은 폐허 위에 그대로 남기고 큰 불상만 복구키로 결정할지도 모른다"며 "큰 불상을 재건하는 데만도 4~5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이데르자드는 이탈리아에서 6년간 조각 공부를 한 뒤 카불 대학에 미술학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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