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인간 되살릴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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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미국 알콜재단의 지하 냉장고에 섭씨 영하 1백96도로 얼어 있는 30여구의 냉동인간.

대부분 암 등의 불치병을 앓다가 치료법을 찾지 못해 죽은 뒤 냉동한 시신들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불치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된 뒤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최근 생체를 얼리고 녹이는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냉동인간의 소생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세계 최고의 생체 냉동기술은 쥐의 자궁과 난소를 통째로 얼려 보관한 뒤 다른 쥐에 이식해 임신하도록 하는 수준이다. 을지의대 김세웅 교수가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 대학 산부인과 로저 고스덴 박사와 공동으로 올해 초 일궈낸 결과다. 포유동물의 장기로서는 처음이었다. 불임치료용으로 인간 난자를 얼려 소생시키는 데도 쩔쩔매고 있는 것에 비하면 쥐의 장기를 냉동 보관, 소생시킨 기술은 괄목할 만한 발전이라는 것이 연구결과를 실은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평이었다.

쥐의 장기보다 수십~수백배나 큰 인간 장기를 그렇게 하는 것은 앞으로 10여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했다.

사람의 생체조직에 적용한 세계 최고의 기술은 난자를 생산하는 난소의 냉동보관. 국내외 주요 종합병원에서는 암치료 등으로 난소가 망가질 가능성이 큰 환자들을 대상으로 냉동 난소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1950년 인간의 정자와 적혈구의 냉동 보존에 성공한 이래 인간 난소와 쥐의 장기를 그렇게 하기까지는 50여년이 걸렸다. 성공률의 차이는 있지만 포유동물의 생체 냉동·소생기술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수준의 크기에서 강낭콩 크기까지 발전한 것이다.

인간이 그보다 수백~수천배 큰 점을 감안하면 통째로 얼린 뒤 되살리는데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金교수는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크기의 인간 냉동난자도 소생 성공률이 아주 낮다"며 "그런 수준의 기술로 얼려진 냉동인간이 깨어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생명의 가장 기본단위인 세포가 동결방지제(주요 성분은 글리세롤)의 독성과 얼음 결정 등에 의해 망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결방지제는 얼음 결정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지만 많이 쓸수록 독성이 강해진다. 그래서 체내의 물을 전부 동결방지제로 바꿔 냉동하지 못한다.

냉동인간 회사들은 어쩔 수 없이 세포 내 액체 중 40%는 얼음, 나머지 60%는 동결방지제로 얼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냉동인간을 만든다. 얼음과 동결방지제의 독성에 의한 세포의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냉동기술이 개발된 뒤 얼린 냉동인간은 모를까, 지금 잠들어 있는 냉동인간은 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실험으로는 섭씨 영하 1백96도의 액체 질소로 냉동한 어떤 포유동물도 되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알콜·바이오타임사 등 미국의 냉동인간 사업을 하는 업체 관계자들은 "나노테크가 발전해 냉동 등으로 망가진 세포 하나하나를 복원할 수 있다면 지금의 냉동인간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복권을 사야 당첨될 확률이 있듯, 냉동인간도 시도하지 않고 나중에 소생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나노테크는 원자나 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초미세 기술.

최근 냉동인간의 소생에 가장 큰 걸림돌인 얼음 결정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세포의 유리화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세포는 섭씨 영하 1백35도에서 얼음 결정이 전혀 없는 끈적끈적한 상태가 된다는 성질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동결방지제의 독성을 없애는 방법과 그 온도를 변함없이 유지시켜줄 물질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문제다.

냉장고처럼 온도가 올라가면 냉동기를 돌려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에서 얼어 있는 냉동인간의 몸은 거미줄처럼 금이 갈 것이다. 50~1백년 뒤의 의술이 이렇게 금이 간 냉동인간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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