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기종 결정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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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업에서 꼭 필요한 생산 설비를 사기로 결정하고 어떤 기계를 살 것인가 결정하는데 10년을 보냈다면 그 기업은 이미 망하고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안보에 꼭 필요한 전투기를 사기로 결정하고, 기종을 선택하는 데에만 10년씩 보내고 있으니, 국방정책 수행에 차질이 많을 것은 자명하다.

14년 끌어 값오를까 걱정

1983년에 우리 공군에 필요한 전투기를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F-16과 F-18 둘 중 하나를 선정하는데 8년이 걸렸다. 미국의 회사끼리 청와대와 국방부를 상대로 로비를 치열하게 전개함으로써 중간에 기종이 번복되고 리베이트까지 얽혀 '율곡사업=비리'라는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후 2000년대를 내다보면서 차기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제기하고, 획득 작업에 들어간 지 14년 만에 기종 결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번의 전투기 선정과정을 보면 80년대 F-16 결정 때와 판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4개 국가의 기종이 경쟁에 끼어들어서 자유 경쟁을 실시했다. 10년 전에는 미국 회사와 정부의 압력과 로비에 청와대와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노출돼 있었으며, 기술이전과 절충교역 또한 보잘 것 없는 일방적인 협상과정을 겪었다.

이번에 국방부는 전력증강 사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전투기 기종 결정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과 정책 실무자들을 평가작업에 투입시켜, 추상적이기 쉬운 국가이익도 전문가들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규정하게 했다. 군 운용 적합성·임무수행 능력·장기적인 수명 주기 비용·기술이전과 계약조건 등을 평가기준으로 정하고, 3백40개 항목의 질문을 선정한 후 전문가 40여명을 참여시켜 객관적으로 점수를 평가해 1단계 평가작업을 마무리했다.

1단계 평가 결과 프랑스의 라팔과 미국의 F-15K가 오차범위 내의 선두로 판명났다. 2차 평가과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F-15K가 고물비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압력에 의해 선정될 수밖에 없다든지, 제2차 평가결과는 미국을 봐주려는 절차라든지 하는 비난이 일고 있다.

2차 평가가 필요하나 하는 의문이 있으나, 국방부가 처음부터 1차 평가결과 최종 선두 성적이 3% 오차범위 내에 들어올 경우 국가안보, 외교관계, 해외시장 개척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2차 평가단계가 있음으로써 F-15K나 라팔 상호간에 치열한 경쟁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고객이 새로운 오퍼를 할 때마다, 세일즈맨은 항상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오겠다고 하지 않던가. 세일즈맨이 돌아올 때까지 불안하고 초조하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국방부의 2단계 평가 방식은 강대국들이 하는 이중 협상 구조를 간파하고, 우리도 똑같은 이중 협상 구조를 만든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1단계에서 F-15K는 성능과 기술이전 면에서 라팔에 다소 뒤지므로, 부품의 한국 내 생산을 대폭 양보해야 했다. 라팔은 상호 작전 운용성, 적기 공급면에서 F-15K에 뒤지므로 기술이전에서 대폭 양보를 해야 했다. 이제 1단계가 끝났으므로 2단계 심사도 공정하고 객관성있게 진행해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뇌물여부 철저히 조사를

2단계에 걸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떨어지는 회사와 소속 국가는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떨어진 회사와 국가의 불만을 여과없이 수용해 국방부의 선정작업을 송두리째 불신하는 것은 곤란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승자가 모두를 가지게 되므로, 경쟁은 몰인격적이며 결과는 냉혹하다. 또한 6~7년 뒤에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제기될 때, 경쟁사들이 다시 페어플레이를 벌일 기회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FX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추진되므로, 국민과 국회는 추진과정에서 비리가 있는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국방부는 국민의 세금이 국가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사업에 쓰여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4년이나 지체돼 온 전투기 기종 선정을 자꾸 미뤄서는 안될 것이다. 미루는 사이에 가격이 급등해 국익에 손해가 됐던 사실을 10년 전에 경험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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