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정치서 희망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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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방 후 장롱 깊숙이 감춰 놓았던 태극기를 꺼내 흔든 것이 바로 자주독립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듯이, 1980년대 후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실현시킨 것이 이 땅에 단숨에 민주정치를 가져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직선제 개헌을 하고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군사정부가 막을 내렸고, 또다시 5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있었다.

그리고 민간정부 10년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진정한 민주정치가 정착되고 있다는 증거와 자신감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그 틈바구니에서 군사독재 시대를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퇴행적 향수(鄕愁)가 퍼져나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흘러가버린 15년. 그동안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정치의 바탕인 국민은 무엇을 하였던가. 과연 우리가 과거의 질서를 벗어 던지고 새삼 찾아온 민주주의를 몸으로 익히기 위해 그만큼의 기간이 꼭 필요했던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은 물론 크다. 하지만 집권자가 선호하는 정치만이 가능했던 오랜 군사독재시대를 상기한다면 너무 조급해하거나 좌절할 까닭도 없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이나 언론이나 기업이나 과거에 길들여진 낡은 정치의 타성과 관행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의 투입은 불가피했다. 나아가 어차피 시간이 지나가야 해결될 매듭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정치적 매듭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것이 바로 보스정치였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섰던 YS와 DJ에게는 장기 군사독재의 종식이라는 당면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앞세운 정치적 보스로서의 절대적 역할이 필요했다. 하지만 보스에게 정치적 권한이 집중되고 다수 정치인이 자신의 미래를 보스에게 의존해야 하는 정치행태가 평상시의 민주주의와 어울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YS와 DJ가 차례로 민간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보스로서의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변화가 있어야 마땅했다. 민주정치의 남은 과제들을 위해 그들이 더 이상 과거의 보스로 남아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정치권뿐만 아니라 언론을 위시한 대다수 국민의 행태는 오히려 보스정치의 지속을 사실상 요구했다. 정치 현안의 중심에 항상 그들이 있기를 원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치 이야기를 풀어 나갔으며, 나아가 야당에도 새로운 보스가 출현하기를 기대했다. 보스는 항상 이 나라 정치문화의 중심에 있어야 했다. 그런 상황이니 보스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해야만 가능한 정치민주화, 특히 정당 내부의 민주화와 의회 민주주의 활성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주의 정치, 불투명한 정치자금,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이합집산, 하향식 공천, 기형적으로 거대한 중앙당 구조 등 구태(舊態)들은 하나같이 끈질긴 보스정치의 뒷모습이다.

그렇지만 이제 2002년 봄, 이렇듯 요지부동이던 낡은 정치체제에 마침내 균열이 생기고 있다. 물론 그 균열은 YS에 이어 DJ의 임기도 마감되고 있고, 그에 따라 기존의 보스정치가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치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에는 과거와는 다른 열기가 있다. 정치권 자체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칙에 훨씬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자기혁신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과 희망이 보인다. 대선후보에 대한 국민경선제, 차기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공천방식의 포기, 정치자금에 대한 솔직한 논의 등은 그 변화의 분명한 증거이자 새로운 실험이다. 진정으로 성숙된 민주정치를 보게 되기까지 앞으로 기다려야 할 세월이 짧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우리가 20세기 후반 내내 지속되었던 한국 정치의 방황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면 그 세월은 훨씬 단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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