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들이 손들고 목욕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프로야구 선수들, 특히 투수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면 색다른 구경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온탕(溫湯)에 들어가더라도 볼을 던지는 손만큼은 좀처럼 물속에 담그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면 손가락에 만들어진 굳은 살이 약해지고 그 손으로 볼을 던지다 보면 피부가 벗겨지기 쉽기 때문에 굳은살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투수들에게 손가락과 어깨·팔꿈치 등은 자신의 생명이나 다름없다.'국보'로 불리는 선동열은 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하면 오른손을 아끼고 왼손을 사용한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당구를 칠 때도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쳤다. 오른쪽 팔꿈치에 충격이 간다는 주위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도 왼손으로 1백50점을 친다.

왼손투수로 장수한 양상문 LG코치는 선동열과는 반대다. 그는 대학 시절 볼링을 배우면서 공을 던지는 왼쪽 어깨·손목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오른손으로 배웠다. 그리고 고교 시절 왼손으로 배운 당구도 함께 오른손으로 전향(?)했다.

그의 볼링 애버리지는 한창 때 1백70점, 당구는 지금도 2백50점을 친다.

프로선수들은 대부분 이처럼 세밀한 구석까지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아낀다. 프로 초창기에는 야간경기가 끝난 뒤에도 잦은 술자리로 몸을 혹사시킨 선수들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시즌 중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마시더라도 폭음하는 선수들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아무리 몸 조심을 해도 길거리 오락실의 '두더지'오락처럼 불쑥 하고 튀어나오는 부상에 망치는 경우가 있다.

LG의 외국인 선수 매니 마르티네스(32)는 지난 5일 대구구장에서 관중석의 팬에게 철조망 사이로 사인볼을 전해주다 철망 아래의 날카로운 철판에 손이 찢어져 무려 24바늘을 꿰맸다. 겨우내 힘든 훈련을 참아내며 시즌 준비를 했다가 정작 시즌 첫날 다쳤으니 단거리 달리기로 따지면 스타트하는 순간 넘어진 셈이다.

그는 최소한 한달 이상 치료받아야 하고 그 뒤 다시 굳은살을 만들어야 타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올시즌 3분의1은 망친 셈이다.

2000년 시즌 초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던 두산의 불펜투수 김유봉(26)은 그해 5월 7일 경기가 끝난 뒤 샤워를 마치고 접이의자를 당겨 앉으려다가 접히는 부분에 손가락이 끼여 피부이식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1군에 못 올라오고 있다.

당시 두산의 주축 구원투수로 꼽혔던 그는 이후 손가락 부상은 완치됐지만 '그때의 그 감'을 찾지 못하고 올해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두산은 그날 이후 라커룸의 접이의자를 모두 교체했다.

마르티네스나 김유봉의 경우처럼 한 순간의 사소한 부주의로 망가진 것을 보면 프로선수들에게는 24시간이 모두 부상을 경계해야 할 시간이다.

'갈기머리' 이상훈은 "내게는 쉬는 것도 운동이다.운동을 더 잘 하기 위해 쉬는 거니까. 그래서 계획적으로 관리하면서 쉬어야 한다"고 했다.그는 좌충우돌식의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특별한 부상은 없었다.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