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의 맛있는 나들이] 삼청동 '산에나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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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물은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듬뿍 든 채소를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점이 놀라워요. 그리고 재료도 단순한 푸성귀에 그치지 않고 무나 버섯까지 다양하잖아요." 얼마 전 외국에서 온 음식전문가에게 나물을 소개했다가 들은 말이다.

외국에선 나물의 재료인 채소를 깨끗이 씻어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이 방식은 싱싱함을 즐기기엔 좋지만, 한번에 많은 양을 먹기엔 부담스럽다. 우리네는 나물 채소를 생으로 먹기보다 데치거나 삶아서 조리한다. 계절 탓도 있지만, 제 철에 갈무리해두었다가 1년 내내 채소를 즐기려는 조상들의 슬기가 담겼다. 삶고 데치다 보면 한 소쿠리의 채소가 한 줌으로 줄어든다. 간을 해서 주물럭주물럭 무쳐놓으면 한 소쿠리 채소가 한 끼 반찬으로 끝나버리기도 한다. 익힌 채소인지라 소화가 잘 돼 많이 먹어도 탈이 날 걱정이 없다. 오히려 섬유소 섭취로 장의 활동을 좋게 한다.

이런 저런 설명에 그는 "요즘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웰빙 푸드가 바로 한국의 나물"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흥분했다.

내친 김에 취재수첩 귀퉁이에 꼭꼭 숨겨놓았던 삼청동의 산채 전문점 '산에나물(02-732-2542)'로 안내했다.

솔잎을 발효시켜 만든 솔잎주로 입을 적시기 무섭게 한 상 가득 펼쳐진 나물 밥상(고마리정식 1만5000원)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더덕취.가시오가피.두릅순.얼레지.참취.고사리.고비.다래순.유채.흐르레기.밤버섯.표고버섯 등. 나물 캐는 아낙이라도 하나하나 이름 대기 버거울 정도로 가짓수가 많다. 젓가락을 들고 어느 것부터 집을까 걱정하는 순간 종업원이 다가와 나물의 이름.특성.효능.먹는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이 집의 나물 요리는 소금과 들기름만으로 간을 맞추고 맛을 낸다. 향과 맛이 강한 파와 마늘은 쓰지 않는다. 나물 자체의 맛을 확실하게 즐기라는 배려다. 산뜻한 두릅순, 쌉쌀한 참취, 향긋한 다래순…. 하나하나 입에 넣으면서 머리 속으로 각각의 맛을 읊어본다. 불행히도 표현력이 모자라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나물을 맛있게 먹는 또 하나의 방법. 산마늘 장아찌에 여러 가지 나물을 한꺼번에 쌈을 싸 먹는 것이다. 선택한 나물에 따라 오묘한 맛이 난다. 표고버섯 된장국도 흑미밥 한 공기가 부족할 정도로 간간한 맛이다.

녹차 다식과 한방차로 입을 마무리할 즈음 얼떨결에 이곳까지 이끌려온 외국인 음식전문가가 한마디한다. "산속의 맑은 공기로 식사한 기분입니다. 앞으로 저를 나물 전도사라고 불러주세요."

유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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