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쪽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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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첸이 1970년대 옛 소비에트 체제를 한참 비판했었습니다. 비판 중 하나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소비에트 체제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다름 아니라 옛 러시아의 자족적 지방문화를 송두리째 붕괴시켰다는 주장입니다. 지금와 생각하면 그건 소비에트·자본주의라는 체제 구분과 상관이 없이 광포한 개발논리의 모더니즘 성격 자체를 문제삼아야 할 듯싶습니다.

신간 『가비오따스』는 그렇게 해서 망가져온 남미 국가 콜롬비아의 땅을 무대로 한 스토리입니다. 4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는 폭력의 시대(라 비올렌시아)의 악순환, 생태계의 파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이 책은 그 땅에서 꽃피운 유토피아 운동 30년의 실화(實話)입니다. "당신이 지금 들은 이야기는 사실이다." 책 뒷날개에 그렇게 쓰여 있더군요. 지구촌 반대쪽의 이 대안공동체 운동을 이번주 '행복한 책읽기'으뜸 의제로 올립니다.

사실 '삶의 질과는 담을 쌓은 살풍경'은 이 땅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요? 동시에 해방 이후 지식인들 일부도 기억해둘 만한 공동체 운동을 실험했습니다. 문동환 목사의 서울 수유리의 '새벽의 집', 사회사업가 장기려 박사의 부산 청십자운동이나 철학자 박종홍 교수의 신생숙 등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김진홍 목사의 활빈교회(현 두레마을), 농사꾼 철학자 윤구병의 변산공동체도 같은 맥락입니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고, 녹색환경을 목표로 한 이런 공동체 실험들을 염두에 두고 『가비오따스』를 함께 읽어보길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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