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관계에 다시 햇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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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동원(林東源)특사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4일 전격 회동은 소강상태에 빠졌던 남북관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간의 교감(交感)속에 보다 큰 틀에서의 합의에 성공함으로써 헝클어졌던 남북간 화해·협력 방안을 이행할 시간표를 다시 짜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으로 악화됐던 북·미관계와 한반도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구름 걷힌 남북관계=林특사는 金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에 합의하고도 이행되지 못한 사항을 위해 金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집중 거론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협추진위원회의 조속한 가동과 ▶군사당국간 회담(국방장관 회담)▶이산가족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 회담 등이 그것이다. 그밖의 현안들도 큰 틀의 가닥이 잡혔다고 볼 수 있다.

林특사의 담판으로 향후 남북관계에는 탄력이 붙을 게 분명하다.

우선 4월 중 4차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고 지난해 11월 결렬된 이후 중단된 7차 장관급 회담이 재개되는 수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남측 이산가족이 대규모 방북단을 구성해 이달 말부터 평양에서 두달간 치러질 아리랑축전을 관람하고 재북가족과 상봉하는 방안.

북측도 이에 상응해 5월 말 개막하는 월드컵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남북한이 상생(相生)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이른바 선남후미(先南後美)방식의 정부 구상도 힘을 받게 됐다.

林특사는 서울로 돌아온 직후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측에 방북 결과와 金위원장의 대미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대북지원 보따리 뭘까=林특사가 북측과의 주고받기를 위해 준비해 간 카드는 비료·식량 지원과 전력 제공이다. 이 문제에 대해 북측도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만t 정도의 비료는 북한측의 요청만 있으면 인도적 차원에서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르면 이달 중 첫 선적이 가능하다.

정부 보유 쌀의 제공도 야당도 잉여쌀의 대북지원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한 만큼 이산가족 상봉 등이 가시화하면 절차상의 문제만 남게 된다. 그러나 북측이 절박하게 바라는 전력지원 문제는 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다.

2000년 12월 4차 장관급회담 때 북측의 2백만㎾ 지원 요청으로 이듬해 2월 평양에서 전력실무협의까지 열었으나 실태조사 등을 둘러싼 양측 이견으로 벽에 부닥쳤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수용 등 조치를 취한다면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미국과의 조율 문제 등이 쉽지 않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전력실무협의가 재개되면 50만㎾ 규모의 긴급지원 방안 논의가 재개될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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