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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폐렴으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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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가구 3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제도가 예정대로 내년 초 실시된다고 한다. 이 세제의 도입 시기를 두고 청와대와 재정경제부의 입장이 달라 줄다리기가 계속되다가 결국 청와대 쪽의 주장대로 결론이 난 것이다. 주요 신문의 만평에는 만신창이가 된 이헌재 부총리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상당수 보수파 인사는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듯하다. "결국 그렇게 되는군. 그런데 코드도 안 맞는 이 부총리나 몇몇 경제전문가는 왜 아직 자리를 지키는 건가. 얼른 물러나 주어야 개혁파 손에서 경제가 더 빨리 결딴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제대로 된 경제처방이 나올 게 아니겠는가."

개혁파의 의견은 다르다. "아니, 3주택이나 보유하는 가구에 중과 좀 하자는데 그렇게까지 반대할 건 뭔가. 기득계층의 이기주의가 너무 심하다. 오죽하면 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부자들이 재산세 조금 더 내는 것에 너무 반발한다며 비난했겠는가. 아무튼 우리 경제는 근본부터 잘못되었으니 기업이나 일부 계층의 엄살에 신경 쓸 것 없이 계속 뜯어 고쳐나가야 하는 게야."

이들 주장을 듣고 있자니 감기 환자를 폐렴으로까지 몰고 가려 한 두 의사의 농담이 생각난다.

추운 겨울날 감기 환자가 첫 번째 의사를 찾아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했다. 의사는 감기에는 약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환자는 무언가 처방을 해달라며 계속 졸라댔다. 마침내 의사는 집에 가서 알몸에 팬티만 입고 학교운동장을 열 바퀴쯤 달려보라는 처방을 내렸다. 환자가 "그렇게 하면 바로 폐렴에 걸릴 텐데요"라며 기겁을 하자 의사는 "감기에는 약이 없지만 폐렴에는 좋은 약이 있으니 걱정 말아요"라고 대답했다.

이 환자가 찾은 두 번째 의사는 다시 한번 종합검사를 하고 나더니 첫 번째 의사와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이유는 달랐다. "당신한테는 지금 감기가 문제가 아니오. 비만기가 있고 성인병 징후가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니 괴롭더라도 웃통 벗고 조깅부터 시작합시다."

한국 경제는 환자 신세다. 감기인지 독감인지 폐렴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지난 2년간 병을 앓아온 건 사실이며 내년 전망 또한 어둡다. 그런 경제를 두고 첫째 의사처럼 차라리 더 빨리 악화돼야 정신을 차릴 것이고 약도 좋은 걸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지금의 병을 너무 가볍게 보고 근본적인 개혁에만 치중한다면 경제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환자의 체력, 외부여건 변화, 의사 자신의 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이상론만 앞세워 개혁을 고집하다가 앞으로 남은 3년도 지금과 같은 상태나 혹은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몰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환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의사로부터의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링거나 아편주사를 놓지 않더라도 격려의 말 또는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되는 얘기 하나로 환자의 정신적 불안감은 크게 줄어들 수 있고, 그것이 병마를 이기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를 회복시킨다며 이런저런 돈 들어가는 대책을 발표하기보다, 정부로서는 국민의 불안감과 경제환경에 관한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려는 노력과 발언을 앞세워야 한다고 본다.

국민과 기업이 움츠러들고, 패로 나누어져 서로 반목 질시하며 협박까지 해대는 모습은 올해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은 따뜻한 말들이 오가며 힘을 합쳐 얼어붙은 경제를 녹여가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