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편법 번지는 의료계 : 병원·약국 짜고 처방전 주고받기 곳곳 '눈속임 分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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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기도의 어느 지역에 있는 7층짜리 건물의 외벽에는 '병·의원 임대 환영'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1층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건물주는 의료기관만 골라 비교적 싸게 임대한다. 이런 '전략' 덕분에 의약분업 이후 이 건물에는 4개의 의원이 들어왔다. 입주 의원들이 발급하는 처방전의 96%는 건물주의 약국으로 간다.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의 담합을 금지한 약사법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의약분업 시행 21개월이 지나면서 각종 편법·불법행위가 생겨났다. 주로 항생제인 주사제 처방이 느는가 하면 담합·리베이트(약품 수수료) 수수관행이 되살아났다. 정부는 당초 약품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의약분업을 도입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집단파업과 건강보험료 상승 등 비싼 대가를 치르고 출범한 분업의 취지가 이렇게 위기에 처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분기의 담합실태를 집중 조사해 1일 발표했다. 그 결과 담합 의혹을 받는 의료기관·약국이 무려 6천3백여곳에 달했다.

전체 약국의 16.5%인 3천1백여곳이 의혹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과 약국 각 1백23곳은 친인척 관계였다. 정부는 의혹 대상 가운데 1천1백여곳이 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보고 집중 실사를 벌이기로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교묘한 리베이트 수수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내가 취급하는 약을 처방해 주는 대가로 의사나 그 가족 등 모두 8명에게 금품 또는 편의를 제공했다. 특히 B대학병원 과장의 부인에게는 7천만원대의 벤츠를 몇년 할부로 사주었다. 과장이 처방전을 줄이려고 하면 할부금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약국 도매상 A씨의 얘기다.

의약분업 직후 잠시 줄었던 주사제(주로 항생제) 처방 역시 늘어났다. 지난해 11월 주사제를 분업대상에서 제외해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하자 그해 10월 44.5%이던 주사제 처방률이 12월 45.6%로 올라갔다. 약사회 관계자는 "약사들이 의사들의 주사제 처방을 견제하던 기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중소병원들은 의약분업 전보다 각종 검사를 24% 더 하고 있다. 물론 검사비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부담한다. 약국들의 임의조제 역시 여전하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약국 4백여곳이 처방전을 임의로 바꾸거나 전문약을 임의조제하다 적발됐다.

신성식·윤혜신·백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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