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아라파트는 敵" 규정 : 이軍, 팔 자치본부 포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중동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29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적'이라고 규정한데 맞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인민해방전선(PFLP)은 "전세계 이스라엘인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탱크 30여대를 동원, 아라파트 수반이 있는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3층짜리 본부 건물 앞까지 진격, 포격과 함께 봉쇄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아라파트의 경호원 1명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5명과 이스라엘군 장교 1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했다.

팔레스타인 소식통은 "이스라엘군이 불도저를 동원해 본부 건물 정문 담벽을 허물었다"고 말했다. 야세르 아베드 라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공보장관은 "아라파트 집무실 주변의 건물 지붕에 저격수가 배치됐고 이스라엘 탱크가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아라파트는 다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29일 오후 예루살렘 남동부 유대인 거주지역인 키리아트 요벨의 한 슈퍼마켓 입구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폭테러를 감행,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한 목격자는 "슈퍼마켓 입구에서 시신 두구를 보았는데 한명은 자폭 여성, 다른 한명은 테러를 저지하려던 경비원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건 직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알 아크샤 순교자여단은 레바논의 TV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폭 공격은 우리가 했다"며 "자폭 여성은 베들레헴 부근 데이셰 난민캠프 출신인 18세의 아야트 알 아크라스"라고 밝혔다.

이슬람 급진단체 하마스는 이날 "모든 이슬람 군사조직들은 단결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와 각료들은 지난 28일 오후 11시부터 8시간 동안 철야회의를 하며 격론을 벌였다. 샤론 총리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아라파트는 테러 조직의 수장"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는 최근의 테러 사례를 나열하며 "이스라엘은 평화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온 것은 테러였다"고 비난했다. 기자들이 "아라파트를 추방할 계획이냐"며 아라파트의 거취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자 샤론 총리 등은 "고립시킨다는 것이 전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아랍정상회의 의장국인 레바논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평화를 거부하는 테러국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빈센트 배틀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와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은 "이스라엘의 행동은 평화구축 노력에 도움이 안된다"고 우려했다.

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