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비주류 궁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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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밀어붙여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관철한 김덕룡(金德龍)의원 등 비주류가 이번엔 코너로 몰리고 있다. 당 대통령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지방선거(6월 13일) 이후로 연기하자는 주장이 주류의 강력한 반발과 소장파의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연기론은 李총재의 지지도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고문보다 낮은 상황에서 李총재를 대선후보로 뽑아 지방선거를 치르면 패배하고, 대선에서도 낭패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당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李총재 측근들은 '또 다른 李총재 흔들기'로 단정하고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김용갑(金容甲)의원 등 민정계 출신이 대다수인 주류 진영은 29일 김덕룡 의원 등을 "제왕적 비주류"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대통령 후보도 없이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것은 지방선거를 포기하자는 것"이라며 "비주류는 당을 흔드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당헌·당규 개정작업을 맡은 당발전특위의 박관용(朴寬用)위원장도 "연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도 주류측 논리에 가세했다.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위해 미래연대의 힘을 활용해온 비주류로선 갑자기 고립무원의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은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초의 경선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당 선관위는 이날 경선 출마자 등록신청 공고를 냈다.

다음달 4,5일 이틀간 후보등록 신청을 받고, 다음달 13일부터 권역별 국민참여 경선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 일정대로라면 서울지역 경선이 끝나는 5월 9일 대선 후보가 선출된다. 이젠 김덕룡 의원 등 비주류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金의원 등이 당의 일정을 수용하고 경선에 출마해 李총재에게 도전하느냐, 아니면 경선을 보이콧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김덕룡 의원은 아직 경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李총재가 金의원과 만나 그동안 쌓인 불신을 해소할 경우 선의의 경쟁은 가능할 것이란 게 당내의 관측이다. 金의원측도 "전대 연기 여부보다는 李총재와의 신뢰관계 형성이 더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李총재는 29일 홍사덕(洪思德)의원을 만나 "전대 연기 여부와 관계없이 협력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金의원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역할도 당부했다고 한다.

金의원이 경선에 출마할 경우 한나라당 경선은 어느 정도 흥행의 요소를 갖추게 된다. 같은 비주류인 이부영(李富榮)·김홍신(金洪信)의원도 경선 참여를 긍정검토 중이므로 잘하면 4파전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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