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美 사회보장과 보호무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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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철강산업, 파트타임 근로자, 의료보험, 가계빚'.영화 '존 큐'에는 미국 경제를 읽을 수 있는 네가지 코드가 담겨 있다. 다니던 철강회사가 어려워지자 정규직에서 파트타임 근로자로 전락해 주당 20시간 밖에 일하지 못하는 존 큐 아치볼드(덴절 워싱턴).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보고도 병원측이 수술비만 따지자 참다 못해 권총을 꺼내들고 병원을 점거한다.

그는 누구인가. 비록 파트타이머이지만 성실하게 일하고, 새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도 아들의 야구시합을 응원한다. 전형적인 미국 가장이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내 데니스(킴벌리 앨리스)도 푼돈이라도 벌겠다며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심장병으로 아들이 쓰러지면서 그는 뜻밖의 사실에 놀란다. 회사가 자신의 보험을 PPO(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선택공급자조합)에서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건강유지조합)로 바꾼 것. 의료비가 싼 대신 일반의에게만 진료받을 수 있는 HMO 가입자는 규정상 전문의 시술이 필요한 심장이식 수술에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 절반의 실업자인 그가 수술비 7만5천달러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은 회사를 원망하지만 사실 그가 다니는 철강회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경기 호황을 예측한 중소 철강업체들이 우후죽순식처럼 설립되면서 채용 경쟁이 일자 기업들이 지나친 '퇴직 후'를 보장해 문제가 된 것이다.

미국철강노조(USWA)는 퇴직 근로자를 위한 경비가 원가의 최고 15%에 이른다며 우려했다. 이렇게 해선 경쟁력이 생길 수 없으니 철강 기업들이 퇴직자의 의료보험 자격을 낮추려 든 것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철강제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나섰다. 경쟁국들은 보호무역주의라며 강하게 반발하지만 정부로선 철강업계의 퇴직자 부담이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유에스스틸이 정부에 요청한 퇴직자 경비는 무려 1백20억달러. 전문가들은 미국 철강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자금 지원 대신 보호무역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한다.

존이 파트타이머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레이건 시대에 확립된 '노동시장의 유연성'으로 상당수 미국 근로자는 비정규직이 됐다. 임금이 낮아 부업을 갖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실업자 등 보험료를 낼 수 없어 의료 혜택을 못받는 인구가 4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

미국 경제가 소비 위주로 움직이는 점도 큰 짐이다. 불황기 때 계속되는 금리인하는 개인의 가계빚을 늘리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지난해 미국은 전체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연체율은 2.8%. 일부 전문가가 경기회복기임에도 금리인상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나친 가계빚이다. 금리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지난해 미국의 개인파산 신청은 1백45만건으로 2000년보다 18.8% 늘었다. 빚을 갚지 못한 존은 차를 차압당했다. 아들의 심장병이 아니라도 취업이 안되면 개인파산을 신청해야 할 처지다.

'존 큐'는 미국 내에서 개봉 직후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라서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장기를 기증받는 미국 문화에 비춰볼 때 난센스"라는 비판에서 "존 큐 같은 실제 사례가 있다"는 긍정론까지 다양하다.

미국에서는 오는 11월 재정과 의료보험이 논의의 중심에 설 중간선거가 있다. '존 큐'는 사회비판이라는 평가를 넘어 정치영화라는 평가도 나올지 모른다. 감독 닉 카사베츠가 미국 인디영화의 대부 존 카사베츠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 철강업계의 연금·보험제도가 세계 경제를 보호무역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존 큐'는 경제 영화로도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존 큐>

원제=John Q (2002)

감독=닉 카사베츠

주연=덴절 워싱턴, 킴벌리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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