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줄어드는 FM 클래식 프로 "나몰라라" 음악인 더 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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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뉴욕의 공영 라디오방송인 WNYC(FM 93.9㎒)가 오는 4월 8일부터 낮시간대 클래식 방송시간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클래식 프로그램을 5시간이나 줄이는 대신 뉴스와 토크 프로로 채운다는 것. WNYC를 통해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즐기던 뉴욕 시민들은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에머슨 4중주단의 첼리스트인 데이비드 핑컬은 이번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방송국에 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핑커스 주커만, 소프라노 돈 업쇼,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 줄리아드 4중주단 등 뉴욕에 사는 유명 음악인들이 서명에 참가했다.

지난해 11월 6일. 오후 4시부터 KBS-FM에서 방송되던 '노래의 날개 위에'가'이금희의 가요 산책'으로 바뀌자 지방 클래식 애호가 1천여명이 서명,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다. 1980년 12월 이후 지방에선 KBS-1FM(클래식)과 2FM(팝·가요)이 하나의 채널로 통합돼 방송돼온 데다, 그나마 유일한 성악 전문 프로그램인 '노래의 날개 위에'를 듣지 못하게 되자 울분을 토한 것이다. 다행히 오는 4월 1일부터는 봄철 프로그램 개편으로 지방에서도 하루 종일 KBS-1FM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클래식 전문 채널인 1FM도 최근 크로스오버 프로그램을 대폭 늘리는 등 청취율에 연연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번 개편에서'저녁의 클래식'대신'세상의 모든 음악'이 신설된 것이 단적인 예다.제목에서 알 수 있듯 크로스오버는 물론 팝·가요도 방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거의 모든 클래식 프로그램에 크로스오버의 물결이 침투돼 팝 프로인지 클래식 프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KBS-1FM의 수준 저하는 물론 FM에서 한 시간도 클래식을 방송하지 않는 MBC·SBS·CBS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국내 음악인들의 무관심이 더욱 안타깝다. 하루 종일 클래식을 트는 WQXR가 있는 데도 WNYC에 탄원서를 낸 뉴욕 음악인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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