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로에 선 이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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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인 이인제(李仁濟)후보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결단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李후보는 25일 밤 서울 자곡동 자택에서 원유철(元裕哲)·이희규(李熙奎)의원 등 자신의 핵심 측근들과 만났다. 경선 정국에서의 자신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李후보는 이날 오후 2시에도 참모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수렴했다. 회의에서는 한결같이 "이런 상황에서 경선을 끝까지 갈 수는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모두 허탈한 모습들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李후보는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물론 전체 16개 지역 중 6개 지역의 경선이 끝난 25일까지 李후보는 아직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李후보는 3천8백34표를 얻어 2천1백44표를 얻은 노무현 후보를 1천6백90표 앞서 있다. 하지만 李후보는 경선의 핵심지역에서 모두 패했다. 24일의 강원지역 경선에서는 불과 7표 차로 盧후보에게 패했다. 게다가 16일의 광주경선에서도 盧후보에 뒤졌다.

두 지역 모두 李후보의 압도적 우세가 예상됐던 지역이었다. 광주는 앞으로 수도권 지역에서의 호남 민심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게다가 보수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의 패배는 노무현 돌풍이 광범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李후보의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끝까지 경선을 강행하는 것이다. 그의 지지자들 가운데서는 "경선본부를 해체하고 끝까지 가자"는 강경론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승산이 희박하다. 내부에서조차 "1위 자리를 내주는 건 시간문제"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패할 경우 李후보의 존재는 당 대선 후보가 된 盧후보의 그늘 아래 가려진다. 대선 출마도 포기해야 한다. 李후보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다만 이 경우 6월 13일로 예정된 지방선거 결과가 변수다. 盧후보를 얼굴로 지방선거를 치른 민주당이 신통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게 되면 당 안팎에서 '후보교체론'이나 '신(新)정계개편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하나는 도중에 사퇴하는 방법이다. 이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다.

李후보는 경선기간 내내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불복문제로 시달려 왔다. 이번에 또 다시 경선에 불복한다면 李후보는 정치적 입지를 찾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칫 정치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

李후보를 따르는 민주당 원내외 지구당 위원장들 가운데서도 얼마나 그를 따를지가 불분명하다. 다만 李후보는 정치권의 흐름이 바뀔 때를 대비해 '음모론' 등을 제기하면서 대선 독자출마의 가능성은 남겨 놓을 수 있게 된다. 李후보는 26일 오전 기자회견을 할 방침이다. 하지만 결국 경선을 계속 끌어갈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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