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죽은 자오쯔양과 산 리펑의 ‘2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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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776년이나 지난 지금, 중국 대륙에서 공명과 중달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죽은 자와 산 자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5년 전에 타계한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과 올해 82세인 리펑(李鵬)이 맞붙었다. 두 사람은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당시 각각 온건파와 강경파로 갈라선 채 권력 투쟁을 벌였다. 자오는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요구한 시위대를 동정하다 총서기에서 쫓겨나 16년간 연금생활 끝에 숨졌다. 1차전은 강경 진압을 주장한 리 총리가 이긴 듯했지만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6·4 20주년을 계기로 자오의 반격이 시작됐다. 자오가 비밀리에 남긴 육성 증언을 토대로 홍콩에서 회고록 『개혁역정(改革歷程)』이 출간되면서다. 한글로도 번역된 회고록에서 자오는 중국 최고 권부의 내밀한 동태를 소상하게 폭로했다. 특히 “중국이 현대화를 실현하려면 정치체제는 반드시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에서 자오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었다. 자오는 수차례 리를 비판했다. 이에 맞서 리는 22일 홍콩에서 『리펑의 6·4 일기』로 맞대응에 나선다. 유혈 진압의 책임을 당시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돌리고 자신을 정당화한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2차전은 이제 진실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종 승자는 역사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자오가 13억 중국 인민을 향해 던진 민주와 정치 개혁이란 묵은 숙제를 중국이 아직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내부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자오와 리의 재대결, 나아가 중국의 민주와 정치 개혁에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유·민주·인권·평화 같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중국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면 알게 모르게 이웃 한반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한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보고도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지 않는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가 단적인 사례다. 어떤 측면에선 천안문의 비극과 천안함 사건은 이름뿐 아니라 일맥상통하는 연관성도 엿보인다. 민주와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행태가 연결고리다.

천안문 사태와 천안함 사건을 대하는 중국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중국 땅에 보편적 가치가 하루빨리 꽃 피어야 한반도에도 진정한 평화가 그만큼 일찍 올 것이라고.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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