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전설’ 웃고 ‘채권왕’ 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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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헤지펀드계의 전설 존 폴슨(55)은 웃고, 채권왕 빌 그로스(66)는 체면을 구겼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판단 차이 때문이다.

16일 파이낸셜 타임스 등에 따르면 폴슨앤드컴퍼니의 폴슨 회장은 최근 금 투자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투자 자산 가치를 달러가 아닌 금으로 표시하는 방식을 통해 앉은 자리에서 고수익을 올린 것. 예컨대 10일 기준 이 회사의 ‘크레디트 오퍼튜니티스펀드’ 의 달러 표시 자산 수익률은 연초 대비 5.3%지만, 금 표시 자산 수익률은 13.5%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가 2.5% 하락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익이다.

올 초부터 금 투자에 공을 들인 그는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말 가파르게 올랐던 금값이 올해 초 하락하면서 돈을 빼겠다는 투자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하면서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그는 금 투자와 동시에 유로화 가치 하락에 베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폴슨과 달리 그로스는 헛발질을 했다. 그는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대표다. 핌코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 국채의 매력이 떨어져 신흥시장 국채를 사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는 경제 회복 속도가 빠른 신흥시장의 채권 가격이 치솟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유럽 위기가 불거지면서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장 안전한 채권이 미국 국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로스도 손을 들었다. 핌코는 지난주부터 미국 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미 국채에 대한 투자 의견도 ‘비중 축소’에서 ‘중립’으로 바꿨다.

그로스의 체면을 더 구기게 한 것은 핌코의 최대 라이벌인 블랙록이다. 블랙록은 핌코보다 한 달여 앞서 미국 국채 매입에 나섰다. 16일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일본·영국 등 각국 정부도 4월부터 미국 국채 보유량을 일제히 늘렸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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