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e-북? 꿈 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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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전자책(e-북)은 디지털화가 아주 쉬우면서도 역설적으로 매우 더딘 분야다. 사람들의 오랜 독서 습관이 모니터보다 종이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력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e-북이 종이책을 위협하거나 언젠가 아예 대체할 것이란 관련 업체들의 장담과 달리 연간 1백40억달러 규모의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미미하다고 최근 보도했다.

시장조사회사인 주피터 미디어에 따르면 e-북 단말기는 지난해 말까지 10만대가 보급되는 데 그쳤다. 당초 관련 업체들은 수백만대가 보급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모니터로 글을 읽는 데 비교적 익숙한 네티즌들의 e-북에 대한 반응조차 차갑다. 시장조사회사인 입소스 북트렌드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e-북을 살 의사가 있느냐'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네명 중 세명(76%)이 부정적이었다.

2000년 '총알차 타기'란 소설을 e-북으로만 팔기 시작한 지 몇시간 만에 2백만 독자들을 끌어들이며 돌풍을 일으켰던 미국의 인기작가 스티븐 킹은 독자들의 관심 부족에 따라 후속작품인 '혹성'의 e-북 연재를 중단한 상태다.

이런 환경 속에서 e-북 관련 업체들이 속속 도산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때 상당한 투자 자금을 확보, 유망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던 e-북 업체인 넷라이브러리와 레시프로칼은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마이티워즈는 아예 문을 닫았다. 초대형 미디어그룹인 미국의 AOL 타임워너는 별도 조직이던 e-북 사업부를 통폐합했으며, 독일 베르텔스만의 자회사인 랜덤하우스도 이런 방식으로 e-북 사업부를 정리했다. 전문가들은 e-북의 단점으로 ▶읽기 불편함▶좁은 선택의 폭▶비싼 가격 등을 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포레스터 리서치의 대니얼 오브라이언 선임연구원은 "많은 사람들은 e-메일이 조금만 길어도 금방 출력버튼을 누른다. 이것보다 훨씬 긴 e-북을 읽기 불편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e-북으로 볼 수 있는 책은 매우 제한돼 있다. 출판업자들이 불법복제 등을 우려해 e-북의 출판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상당수 출판업자들은 기존 종이책 사업에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e-북의 가격을 일부러 높게 매기고 있다.

다만 백과사전·여행안내서 등에서는 e-북의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런 책들은 소설처럼 긴 글을 계속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만 찾아보면 되기 때문에 검색이 쉬운 e-북이 종이책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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