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박사들이 작명소 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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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20년간 동양철학을 공부해 온 지식인으로서 작명소를 차리는 것이 망설여지고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강단학계에서 비전을 발견할 수 없어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동양철학 박사 세 사람이 함께 사이버 작명소(http://www.onname.net)를 차렸다. 대만 동해대의 양명학 권위자인 차이런허우(蔡仁厚)교수에게서 배운 김기주 박사와 대구 계명대에서 동양미학과 주역 전공으로 학위를 딴 황지원·이기훈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대학 시간강사이기도 한 이들의 작명소 이름은 '성지(誠之)바른이름연구소'. 건당 10만원의 작명비를 받는 엄연한 돈벌이다.

이들이 작명 고객을 접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 사회에 이름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고객의 30%가 개명(改名)을 원하는 사람들이고, 연령대는 20~30대가 주류다. 시중의 작명소에서 '이름이 나빠 삶에 애로가 많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다 이들을 찾는데, 그들에게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하면 오히려 실망을 한단다. 이미 자기 이름에 애착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들은 '의미론'에 입각한 이름문화를 확산시켜 왜곡된 작명문화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사명감으로 발전했다고나 할까.

"기존의 작명소와 우리가 다른 점은 사주나 역술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예측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기존의 작명소는 운명론을 강조합니다. 사주나 역술이 운명의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겁을 주지만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실제 작명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의 손자 이름을 지어놓고 맘에 안드는지 이들에게 평가를 의뢰했다. 시중의 작명소에서 말하듯 운명을 가름할 만한 작명의 절대적 기준이란 없음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이들은 말한다. 작명 방법상 사주나 음양오행을 이들도 따져 본다. 하지만 '돈만 내면 운명을 초월한다'고 혹세무민하며 근거도 없는 '면죄부'를 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름은 대개 출세해 돈 잘 벌고 오래 살라는 기원을 담는다. 부자·장수·명예라는 인간의 본능적 소망에서 이들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본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인문(人文)의 향기를 불어넣자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지금은 맥이 끊겼지만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가(儒家)나 도가(道家)철학의 경전에서 의미 있는 구절을 빌려 이름을 짓겠다고 한다. "선조들 중 훌륭한 분들의 이름을 요즘 이름 짓듯 풀어 보세요. 운세가 흉칙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들은 숫자의 조합보다 이름에 담긴 의미를 중시했고 그 의미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학계에서의 '왕따'를 무릅쓴 이들의 개업이 예사롭지만 않은 것은 대학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얽혀 벌어진 우리 지식사회의 '우울한 코미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개업은 개인적 사업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회적 사건으로도 읽힌다.

정통 동양철학과 미아리의 '××철학관'을 여전히 헷갈려 하는 게 현실이기에 동양철학이 갖는 점술가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해온 학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행위는 심각한 일탈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동양철학 교수는 "학문이 깊어지면서 영역을 확장해 옛 선비들처럼 교양 차원에서 이름을 짓고 풍수도 보고 하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돈벌이 차원에 그친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서 또 하나의 비극적 희극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대학 시간강사들의 평균 연봉이 4백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시간당 2만원씩 일주일에 두 강좌 여섯 시간 강의한 임금을 8개월에 나누어 받으니 월급으로 치면 50만원이다. '보따리 장사'(대학 시간강사)를 하며 '교수 임용'이라는 불투명한 미래를 마냥 기다리기엔 눈앞에 부모와 처자식이 먼저 아른거렸다고 이들은 말한다.

세 사람은 『소학(小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말을 맺었다. "화와 복은 따로 결정된 것이 없으니, 오로지 사람이 스스로의 행동에 따라 초래하는 것이다(禍福無門, 惟人自召)".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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