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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은 꼭 필요한 복지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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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저부담.고급여의 재정 불균형 구조, 광범위한 연금 사각지대의 존재, 근로자와 자영자 간의 불형평성, 기금운용에 대한 불신 확대 등의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2004년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민연금 도입 이전에 노인이 된 계층에 대해 전혀 대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작 보호대상이 돼야 할 중하계층을 사각지대에 방치해 둠으로써 국민연금제도 본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번 연금법 개정안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더 내고 덜 받도록 하는 재정안정 목표도 기금 고갈 시점을 20여년 연장하는데 불과한 불완전한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의 급변하는 경제사회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적연금제도의 개편이 불가피하다.

최근 국민연금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현행 공적연금제도를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자는 안이다. 국민연금 이원화안은 기초연금을 통해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노후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도록 하고, 소득비례연금을 통해서는 추가적인 보험료의 납부를 통해 개별적인 노후설계에 부합하는 소득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만이 엄청난 세대 간 소득이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소득이 없어서 연금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은 미래세대로부터도 소득이전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그런 점에 1인 1연금의 기초연금제도는 세대 간 소득이전의 공평성을 높이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즉 과거 가족단위로 이뤄지던 부양부담이 기초연금을 통해 근로세대가 함께 노령세대를 부양하는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기초연금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이다.

인구 고령화가 8%인 현 시점에서도 재원 조달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총인구 중 8%의 노인을 위해 국민총생산(GDP)의 1%를 부담할 수 없는가를 반문하고 싶다. 오늘날의 경제개발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노인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 해서 한푼의 연금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는 미래 세대에 과감하게 세대 간 이전을 주장할 수 있는가? 재정추계에 의하면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할 경우 노인인구 비율이 30%에 달하는 시점에 GDP의 5%를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70년께 총인구 30%인 노인에게 최저생계비 보장을 위해 GDP의 5%를 지급하는 것이 무리인가?

기초연금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연금제도의 탓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노인 부양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부담도 힘들다고 하면, 과거 늙은 부모를 산중에 버렸던 고려장제도를 부활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노인복지에 앞장서야 할 보건복지부가 재원문제 때문에 기초연금을 못하겠다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은 복지부가 국민연금 기금이 이원화될 때 국민연금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단일연금체계를 고수해 막대한 국민연금기금을 단독으로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는 부처 이기주의에 의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복지국가를 삶의 문제를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과제를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국가라고 정의할 때, 기초연금시스템은 노령이나 장애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해 국민이 함께 대처함으로써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령화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세대 간 부양을 위해 노령세대와 근로세대가 어떠한 사회계약을 체결할 것인가에 있다.

구체적인 연금급여 수준과 비용부담 수준, 그리고 그 방법들을 합의해 나가야 한다. 국민연금은 정책결정 과정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던 시대에 사회적 합의절차 없이 만들어진 규칙이므로, 국민연금제도가 무엇인지 국민도 알게 된 현 시점에서 국민의 합의를 새롭게 도출하자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최근에 던진 화두 "나눔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고 나누고 받는 사람 모두 충만해진다"를 되새겨 보아야 할 시점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금융보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