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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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때가 대학 초년의 여름방학 무렵이었는데 영식이는 몇 번 헛것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의 방에는 군병원에서 사용하던 낡은 스프링 철침대가 있었는데 옆으로 누워 자다가 문득 잠이 깨자 희미하게 무슨 웃음소리처럼 키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눈앞에 하얀 손이 나타나 흔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층계 앞의 문을 여니까 저 층계 맨 아래쪽에 여자가 서서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뒤에 주위에는 이렇듯 어른들의 상처 같은 가책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언제나 밥상머리에서나 우리 집에 잠깐 마을을 와서도 자리에 앉기만 하면 고개 숙여 일단 기도부터 올리던 영식이네 그 창백한 어머니. 내가 영식이를 찾으러 갔다가 몇 번을 불렀는데 그의 매형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가 아주 짧게 "없다"라고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차갑고 귀찮은 듯한 시선이 왠지 오랫동안 인상에 남았다.

태균이는 바로 우리 집 앞의 배추밭 건너편, 그러니까 쌍성루 벽돌담에 잇대어 있는 작은 한옥에 살던 애다. 집은 우리 집처럼 기와를 올렸는데 판자 울타리의 대문 위에는 함석으로 멋진 처마를 휘어지게 만들어 올려놓았다. 문간 바로 옆에 그 애 할아버지의 공방이 있었다. 아버지는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의용군에 나갔는지 납북되었는지 애매하다. 아무튼 그냥 보통 백성으로 젊은 사람이었으니 납북까지야 모르지만 군대에라도 끌려갔는지 모르겠다. 태균이 어머니가 보통 분이 아니라서 내 어머니도 그이 칭찬을 하곤 했다. 어머니는 개가를 서슴지 않던 '이남 여자'들과 달리 그이가 점잖고 기품있는 여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서울의 서민 아낙네답게 머리를 물빗으로 단정히 빗어 비녀를 꼽고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에다 앞치마를 두르고 혼자 있는 시아버지 세 끼니 봉양하고 밭에 나와 야채를 가꾸어 살림에 보탰다. 우리 철없는 것들은 그녀가 파고 모아둔 거름구덩이에 종종 빠지고는 그 집을 욕하고 저주하곤 했다. 태균이 할아버지는 상투에 망건 쓰고 공방에 들어앉아 물소 뿔을 깎거나 주석 무늬를 잘라내곤 했다. 나도 몇 번 그 공방에 들어가서 아름답고 기묘한 공예품들을 본 적이 있었다.

태균이는 나보다 두세 살 위라서 내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보통 때에는 대들거나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는 짓궂은 편이었고 자기 또래의 동회장 아들과 같이 있을 때면 우리 아랫것들을 놀리고 괴롭혔다. 어느 날 그가 나를 골리기에 분김에 돌을 주워서 던졌더니 '애고 잘코사니야' 정통으로 태균이 머리에 맞아버렸다. 태균이가 터진 머리를 한 손으로 쥐고 나를 잡으려고 쫓아왔고 나도 죽자사자 달아났다. 내가 집으로 헐레벌떡 들어서는데 마침 출타하는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버지는 "이 녀석 앞 좀 보고 다녀" 하면서 내 머리에 알밤을 때리고는 길에 나섰는데 그때에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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