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昌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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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정치력과 리더십의 시험대에 올랐다. 13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당 내분 수습에 착수했다.

내홍을 잘 진정시키면 비 온 뒤 땅이 굳듯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김덕룡(金德龍)·홍사덕(洪思德)의원이 끝내 당을 떠나고, 일부 의원이 극도로 동요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의 내분은 미봉책으로 해소될 수준을 넘어섰다. 상당수 의원이 李총재의 당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다. 李총재는 부인하지만 '측근 정치'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성난 파도와 같다.

30~40대 의원·지구당위원장 30여명으로 구성된 미래연대는 이날 "총재 주변에서 당의 단합을 해치는 어떤 행위도 자제해 줄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李총재에게 우회적으로 측근 정치의 청산을 주문한 것이다. 오는 5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와 당권을 분리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할 것도 요구했다.

김홍신(金洪信)·김원웅(金元雄)·서상섭(徐相燮)의원 등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李총재가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경우 '정풍(整風)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대선 전 집단지도체제 도입 여부다. 그렇게 되면 李총재는 대통령 선거에만 몰두하고, 당권은 놓게 된다.

측근 정치니,'제왕적 총재'니 하는 얘기도 잠잠해질 수 있다. 박근혜(朴槿惠)의원이 복당하기는 어렵겠지만 김덕룡·홍사덕 의원의 마음은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李총재 주변은 의견이 엇갈려 있다. "김덕룡·홍사덕 의원까지 나가면 큰일 난다"며 대선 전 집단지도체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달 27일 중앙위 운영위에서 통과된 당헌·당규(대선 후 집단지도체제)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뒤집으란 말이냐"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이상득(李相得)사무총장·이강두(李康斗)정책위의장·윤여준(尹汝雋)기획위원장 등 주요 당직자들이 반대한다.

일각에선 절충안으로 5월 전당대회 후 총재권한대행 체제를 가동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李총재가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와 총재로 선출되더라도 당무에선 손을 떼는 방안이다.

그러나 "그럴 바엔 대선 전 집단지도체제를 전격 도입하는 게 낫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李총재는 일단 김덕룡·홍사덕 의원을 비롯, 여러 사람들을 만나본 뒤 결심을 할 것 같다. 김덕룡·홍사덕 의원과는 당 체제 문제말고도 풀어야 할 게 있다. 李총재에 대한 불신(不信)이다.

李총재가 그걸 털어버리면 내분 사태는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李총재의 한 측근은 "총재도 그 점을 잘 알며, 어떻게 해서든 두 사람과 다시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李총재는 1996년 1월 정치 입문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치력·포용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하면 그런 비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기가 곧 기회인 것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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