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임대분쟁委 설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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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이사철만 되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전세시장이 불안해진다. 전세금이 턱없이 오르기도 하고, 오른 전세 보증금을 시중금리를 훨씬 넘는 높은 금리로 환산해 많은 월세를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도 아파트 전세금은 20.0%나 상승했다. 짝수해에는 전세금이 더 많이 오른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IMF 직후인 1998년과 99년을 제외하고 90년대 평균을 보면 홀수해에는 전세금이 평균 6.8% 올랐으나 짝수해에는 9.4%로 38% 정도 더 많이 올랐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전세시장의 가격상승폭도 예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금이 오르는 근본 원인은 수요에 비해 마땅한 전세가 부족한 수급 불균형 때문이다. 이러한 양적 부족이라는 원인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전세금 인상의 적절한 기준을 설정하는 한편 과도한 임대료 부담으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의 이자율을 최고 연 15%로 묶어 임차인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임차인의 보호를 위해 공공이 개입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77.4%에 지나지 않고 전세 시장이 공급자 주도의 시장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전환이자율 상한제는 실효성이 적고, 심지어 전세금을 더욱 상승시킬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시중의 전환이자율은 연 12% 안팎의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받을 수 있다"는 상한선이 도입되면 임대자는 모두 15%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한선에 의해 받지 못하는 월세금을 전세금을 더욱 높여 만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고 이 경우 인근의 전세금이 덩달아 오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전세 파동으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마다 임대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운영해 과도한 전세금 인상을 적극 억제해야 한다.

구청마다 임대료 분쟁조정위원회를 둬 그 지역의 표준임대료를 결정하고, 임대료를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을 조정하는 한편 전셋집을 찾는 임차인들에게 임대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지자체의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임대료조정위원단(Rent Asse

ssment Panels)'이 민간 임대주택에서의 분쟁을 조정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시에는 '임대료안정위원회(Rent Guidelines Board)'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 서울시와 몇몇 구에서 분쟁조정위원회를 두었으나 법적인 근거가 없었고, 조정을 위한 임대료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편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과 우리나라 대도시의 주택부족을 고려할 때 임대분쟁조정위원회는 반드시 활성화돼야 한다. 임차인도 지자체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의 주민이다.

전세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해를 맞아 갖가지 공약이 넘쳐나고 있다.

단체장 후보자들은 지자체 내에 임대분쟁조정위를 설치하고 활성화해 지역에 살고 있는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주민생활 밀착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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