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일본경제 왜 휘청대나요 성장 거품 꺼지며 투자'피돌기'멈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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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요즘 온통 일본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부자나라인 일본이 정말 어려운 건가요.

일본경제는 1990년 이후 서서히 활기를 잃어 왔어요. 곧 발표되겠지만 지난해의 경우 2% 정도 마이너스 성장이 될 듯합니다. 경제활동으로 만들어낸 부(富)의 합계가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뜻이죠.1년새 그만큼 가난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물가가 3년 연속 떨어지고 있어요. 일본처럼 물가가 비싼 나라 소비자들에겐 희소식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너무 오래 계속되면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들지요. 기업이 어려워지면 실업자가 늘고요. 이렇게 물가하락으로 경제 전체가 움츠러드는 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실업률은 자꾸 높아지고 있어요. 90년 2.1%에서 지금은 5.3%나 됩니다. 우리나라가 3.7%인데 비하면 무척 높지요. 실업자수는 3백44만명에 달하는데 앞으로도 줄어들 기미가 안보여요.

그러나 97,98년 한국의 경제위기와는 사정이 달라요. 그때 한국에선 갑자기 길이 텅텅 빌 정도로 경제가 움츠러들었지만 일본은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랍니다.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호황이 아니라는 뜻에서 어렵다는 것이지 나라경제가 거덜날 지경은 아니거든요. 단순한 예지만 지금도 유명 관광지에는 2주일 전쯤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못 구해요. 불안하고 답답하긴 한데 절박한 위기감은 없다는 얘기지요.

그렇게 잘 나가던 일본경제가 왜 어려워진 거지요.

80년대 말 일본에선 주식과 부동산값이 천장을 모르고 오르던 적이 있었어요. 모두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기업은 은행돈을 빌려 땅을 사고 그 땅을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려 다른 땅을 사들였습니다. 그래도 땅값은 자꾸 올라가니 가만히 앉아 돈을 벌 수 있었지요.

'거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요? 실제 가치보다 너무 값이 올라 과열돼 있는 상태를 말해요. 80년대 말 일본경제가 절정기를 누릴 때가 꼭 그런 꼴이었어요.'거품경제'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어요.

그러던 것이 90년부터 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답니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것이 10여년간 멈추지 않고 있어요. 주가는 89년 3만8천9백15엔에서 요즘 1만엔선으로 주저앉았고, 부동산 값도 반토막이 났지요. 결국 기업이나 개인들 모두 큰 손해를 보게 됐어요. 이를 돈으로 따지면 무려 1천조엔에 달한다고 해요. 이것이 계속 일본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겁니다.

빚을 진 기업 중에는 못 갚는 곳이 많이 나왔어요. 은행이 돈을 빌려줬지만 기업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돈을 부실채권이라고 해요. 이렇게 쌓여 있는 부실채권이 43조엔쯤 된답니다. 일본정부가 발표한 게 그 정도지 외국에선 1백50조엔으로 보기도 해요. 은행에 부실채권이 많으면 건전한 기업에 빌려줄 돈이 줄어들겠죠. 또 은행들은 부실이 더 늘어날 것을 걱정해 기업에 대출하는 것을 꺼리게 될거고요. 은행의 돈줄이 막히니까 경제가 더욱 위축되고 있는 상태랍니다.

부실채권부터 시원스럽게 정리하면 되지 않나요.

한꺼번에 정리하면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어요. 부실기업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으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와 사회가 불안해지겠죠? 부실한 곳이 많은 건설업의 경우 일본 전체 취업자의 10%를 떠안고 있어요.

또 부실기업을 일시에 정리하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더 어려워져요. 큰 은행이 쓰러지면 엄청난 충격이 와요. 정부가 은행을 지원하려면 국민세금을 써야 하니까 국민부담도 커지겠죠?

그러나 부실채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멀쩡한 기업들도 자꾸 어려워지게 된답니다. 금융이란 '돈(金)을 빌려준다(融)'는 뜻인데 은행들이 부실채권에 눌려 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돈을 경제의 혈액이라고 한답니다. 돈이 안 돌면 몸에서 피돌기가 멈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활력을 잃는 거지요. 이때 늘어나는 것은 실업자와 퇴직한 노인들이랍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세금도 잘 안 걷혀 나라빚도 불어납니다. 이미 일본의 나라빚은 6백66조엔이나 된답니다. 결국 일본국민 1인당 5백만엔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일본경제가 회복될 가망은 없나요.

부실채권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외과수술로 썩은 살을 도려내 새살이 돋아나게 하듯 부실기업이나 은행들을 죄다 없애버리고 건실한 곳만 살려두는 것이죠. 바로 구조조정이라는 거죠. 그러나 말이 쉽지 실제로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릅니다.

또 한방에서 보약을 쓰듯 경제의 기력을 서서히 되살려주는 처방도 필요합니다. 기업이나 은행에 돈을 더 풀어주고 나랏돈으로 은행의 부실을 메워주는 것이지요. 그러는 동안 수출이 늘어 경제가 회복되면 부실채권을 빨리 털어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앞날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려요.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경기를 잘 조절하면 2005년부터는 3% 정도의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계속 어렵다는 비관론도 있거든요.

혹시 일본이 2류 국가로 추락하는 건 아닐까요.

성급하게 결론 낼 필요는 없습니다. 부실채권이 문제지만 일본기업들이 모두 부실한 것은 아니거든요. 부실채권의 70%가 건설·유통·부동산에 몰려 있고, 제조업은 건실한 기업이 더 많답니다. 소니나 도요타는 여전히 세계일류 기업이잖아요.

일본의 개인들은 아직 돈이 많아요. 일본사람들의 저축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무려 1천4백조엔이랍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여기에 10을 곱해야 하니까 상상이 안 될 정도죠. 또 일본기업들도 세계 곳곳에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이것이 일본경제의 저력이랍니다. 경제규모로 일본은 미국 다음입니다. 3등인 독일의 2.5배가 넘고 우리보다는 10배 이상이나 커요. 일본이 어렵다고 하지만 2류 국가로 추락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당장 2등 자리를 빼앗기지도 않을 겁니다. 일본경제가 회복되면 우리 물건도 많이 사주고 한국에 투자도 많이 하게 됩니다.

반대로 계속 어려워지면 우리 물건을 잘 안 사줄 테니 우리에게도 손해랍니다.

일본 경제에 대한 좀더 상세한 우리말 정보는 아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http://www.bok.or.kr

▶삼성경제연구소 http://seriecon.seri.org

▶신한종합연구소 http://www.sri.re.kr

▶주한일본대사관 http://www.japan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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