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주며 중독자 치료하는 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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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앞으로 마약 중독자들은 비싼 돈 주고 몰래 마약 거래를 할 필요가 없다. 불결한 주사기로 마약을 주입하다 에이즈 같은 치명적 질병에 걸릴 위험도 사라졌다. 특히 마약을 흡입했다고 구속돼 감방에 갈 걱정은 안해도 된다.대신 정부가 제공하는 깨끗한 마약을 하루 3회씩 공짜로 즐길 수 있다."

웬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는 이야기가 독일의 마약 중독자들에겐 현실이 됐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27일 과거 행정수도였던 본에 최초의 '헤로인 이동병원'을 열었다. 이 병원은 말 그대로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일반 병원처럼 마약 중독자들을 입원시켜 치료하지 않는다. 하루 세차례 마약 중독자들은 편한 시간에 이곳에 들러 의사가 놓아주는 청결한 마약주사를 맞고 다시 일상 생활에 복귀하면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마약을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마약을 공급받는 중독자는 27개월간 의료진의 철저한 통제 아래 투여량을 점차 줄여 나가는 치료를 받게 된다. 본에서 이런 치료를 받게 되는 마약 중독자는 약 1백명. 이들 중 50명은 헤로인을 공급받고 나머지 50명은 메타돈이란 대용 약물을 공급받는다. 본 시청 관계자는 "많은 중독자들이 처음엔 이같은 치료를 꺼릴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숫자가 늘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이동병원이 본에만 생기는 게 아니다. 올 여름까지 함부르크·뮌헨·프랑크푸르트·쾰른·하노버·칼스루에 등 7개 도시에 개설돼 모두 1천1백20명의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게 된다. 이들도 본의 경우처럼 절반은 헤로인을, 나머지 절반은 메타돈을 공급받는다.

독일 정부가 이런 의료시설을 만들게 된 동기는 '헤로인 지원을 통한 마약중독 치료'로 불리는 이 방법이 중증 중독자들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서 때문이다.

특히 메타돈을 이용한 치료법은 그간 여러가지 방법에 실패한 마약 중독자들에게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마약사범 퇴치 노력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행정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의 마약 대책은 구속과 수감, 그리고 치료감호가 전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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