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섹시걸' 실내악단 bond 내달 서울 무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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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바이올린의 곡선이 여체를 닮았기 때문일까. 슈퍼 모델 뺨치는 미모의 여성 현악기 주자를 앞세운 섹시 마케팅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클래식의 근엄함을 벗어던진 파격적인 무대 매너와 과감한 노출이 20~30대 신세대 청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CD 재킷을 찍었다가 음반사의 제지로 다른 사진으로 교체한 영국의 여성 일렉트릭 현악4중주단 '본드'. 테크노 댄스 리듬으로 가득찬 이들의 데뷔음반은 영국 클래식 차트에서 팝차트로 쫓겨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사실 크로스오버란 클래식과 팝 차트를 옮겨다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은 영국의 명문 길드홀 음악원과 왕립음악원에서 클래식을 제대로 전공한 젊은 연주자들이다. 솔·힙합·재즈·댄스·영화음악 등 좋아하는 음악은 제각각이지만 동시대의 감성을 함께 호흡하는 20대 중반의 여성들이다.

지난해 음반 홍보차 TV 등 쇼케이스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던 이들이 오는 3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때마침 데뷔 음반 '본(Born)'에 이어 지난해 런던 로열 알버트홀 공연실황이 DVD로 출시됐다. 'Born'은 유럽에서만도 1백만장 이상이 팔렸고, 일본에선 지난해 8월 출시돼 클래식 차트 1위, 팝차트 30위에 올랐으며 국내에선 5만장이 팔려나갔다.

'클래식계의 스파이스 걸스'란 별명이 붙은 이들은 레드 제플린·데이비드 보위에 이어 록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프로모터 멜 부시의'작품'. 음악원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녹음 스튜디오에 들렀다가 4중주단을 결성한 것이다. 첼리스트 게이 이 웨스터호프(25)는 실제로 여러차례 스파이스 걸스의 앨범 녹음을 위해 첼로를 연주한 적이 있다.

여성만으로 결성된 실내악단이 출현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외모나 복장뿐 아니라 이들이 연주하는 레퍼토리도 팝이나 록에 더 가깝다. 본드의 홈페이지(www.bond-music.com)에는 음반 커버에 나오지는 않지만 다양한 복장과 포즈로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나이즐 케네디와 로비 라카도슈를 좋아한다는 헤일리 에커(제1바이올린·24),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좋아하며 마크 노플러의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한 이오스(제2바이올린·24), 시드니 음악원·길드홀 음악원 출신의 타냐 데이비스(비올라·24), 브라이언 애덤스와 연주한 적이 있는 게이 이 웨스터호프(첼로) 등이 그 주인공.

섹시한 옷차림과 표정을 담은 이들의 사진이 음반 판매에 적잖이 도움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외모만 앞세우고 음악이 별 볼일 없다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옷차림이 야하다고 하지만 팝가수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봐줄만 하다.

미녀 군단을 내세운 마케팅은 클래식 음반시장을 휩쓸고 있는 크로스오버와 무관하지 않다. 클래식 음반사에서 최근에 내놓은 새 음반 중 필립스는 40%, 소니 클래시컬은 50%, BMG는 60%가 내용 면에서 크로스오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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