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좋은 책 넘쳐나 '이달의 책'고르기 행복한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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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좋은 책을 권하려다가 종종 좋은 책을 죽이곤(?) 한다. 무엇을 선택한다는 행위란 곧바로 나머지를 배제한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 밤에 열린 한국출판인회의의 도서선정회의에서도 그랬다. 두 달에 한 번씩 '이 달의 좋은 책'들을 선정하는데, 예술·과학·청소년 분야에서 좋은 책들이 넘쳐 부득이 몇 권을 젖혀 놓았던 것이다. 나 역시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오랜만에 몰려든 아름답고 싱싱한 물고기떼 가운데 오직 네마리(청소년 분야 선정도서 종수)만 잡으라니!

우선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삶 속에서 글을 길어 올린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날고 싶지만』(한국글쓰기연구회 지도, 보리)을 골랐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며 1318세대의 생각과 감정을 잘 정리해 낸 튼실한 글모음이라는 판단에서다.

곧이어 망설임에 괴로워진다. 『타쉬』(사르비예 텐베르켄, 샘터)와 『손끝으로 느끼는 세상』(존 헐, 우리 교육) 가운데 어느 책을 고를까?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시각장애자의 삶을 진지하게 보여주면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같은 책들. 훌륭한 책들이라 모두 고르고 싶지만 그러면 다른 책을 젖혀 놓아야 한다. 좀처럼 결정할 수 없어 뒤로 미룬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풀어 놓은 『남염부주지 외』(조면희 옮김, 현암사)는 팬터지와 연관하며 읽을 수 있는 우리 고전. 고전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쉽게 소개해 주고 있는 시리즈 기획 의도를 높이 사고 싶다.

이어서 『저·8·계의 수학 나라』(방승희, 동녘)는 수학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독창적인 책. 중 2년생부터 꼼꼼하게 읽어가면 흥미있게 수학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여기에 『망치를 든 지질학자』(장순근, 가람기획)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랫동안 현장을 누비며 연구해 온 학자의 노력이 알차고 쉽게 펼쳐지고 있다.

어느새 제한된 종수를 넘어섰으나 욕심을 더 낸다. 청소년 도서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하면서, 다른 분야의 선정위원들이 디민 책들 가운데서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탁석산, 책세상)를 더한다. 우리 나라의 신문 사설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예리하게 분석한 대목이 돋보여서다.

휴우, 이렇게 했어도 겨우 여섯마리, 일곱권을 골라낼 수 있었을 뿐이다. 이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노니, 『녹색경전』(김욱동 엮음, 범우사),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아』(알렉상드라 라피에르, 민음사), 『에필로그』(칼 세이건, 사이언스 북스), 『옛그림과 함께 읽는 이고본 춘향전』(성현경 풀고 옮김, 열림원), 『철학과 굴뚝 청소부』(이진경, 그린비)여. 나는 그대들을 결코 죽이려 한 것이 아니었노라. 그러니 다른 자리에서 우리 반드시 다시 만날 터!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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