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쇼트트랙 金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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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이 편파 판정과 오심 시비로 얼룩지고 있다."마음의 불을 밝혀라"라는 대회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21세기 첫 겨울 스포츠 축제가 멍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의 이기주의와 주최국 텃세 때문이라지만 우리나라가 피해 당사국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히 어제 쇼트트랙 남자 1천5백m 결승전의 어처구니없는 판정은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가장 먼저 골인한 우리나라 김동성 선수를 석연찮은 이유로 실격시키고 2위인 미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준 것이다. 金선수가 미국 선수의 앞지르기를 방해했다는 게 심판의 실격 판정 이유다.

중계방송 비디오 테이프를 거듭 보아도 중반 이후 줄곧 선두를 지킨 金선수의 행동에서 실격당할 만한 반칙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미국 선수의 신사답지 못한 할리우드 액션(과장 제스처)이 더 문제로 보였다. 경기 해설자나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이해가 안가는 판정이라는 지적이다. 겨울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가 경기 직후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 수십만명이 참여해 96%의 네티즌이 '판정이 정당하지 않다'고 밝힌 것은 바로 판정이 잘못됐다는 객관적 증거다. 국내 네티즌들이 주최국 선수의 영웅 만들기에 한국이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아우성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막 이후 판정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담합 판정 소동 끝에 공동 금메달로 바꿔 경기 후 엿새 만에 시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의 부정 출발 시비가 일었고, 쇼트트랙 예선의 우리나라 김동성·안현수 선수에 대한 오심 시비도 잇따랐다.

페어 플레이가 사라진 스포츠는 폭력과 마찬가지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다. 모두들 승패와 메달 색깔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스포츠의 본질을 잊은 게 아닌지 새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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