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데리다가 재직한 명문교 佛고등사회과학원 자크 르벨 총장 訪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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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브리지트 바르도는 동물을 좋아하는 대신 이민자나 남자를 싫어하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7일 방한한 자크 르벨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총장은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인호)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르벨 총장은 미시적 문화생활사를 통해 역사를 조망하는 아날학파의 대표적 학자이며,이 학파의 기관지인 '아날'의 편집인을 지냈다.

그는 9.11테러에 대해 "그 효과를 예견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미국에 매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과거와 달리 하나의 패권적 국가가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사건이 9.11테러"라고 말했다. 또 "반미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여기에는 발전이 곧 미국적 생활양식의 모방은 아니라는 식으로 바뀐 사고방식이 뒤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르벨 총장은 "고등사회과학원에는 두개의 한국학 교수직이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학 연구의 틀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학에 한국학 센터가 생긴 것은 1989년이다.

"앞으로 인지과학을 사회과학 분야에 적용할 프로그램을 확충할 것"이라고 밝힌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것이 '반인문학적'이며 '상대주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대인 학살도 현실이 아닌 구성된 사실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윤리적 차원에서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르벨 총장은 해체주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원에 재직하다 최근 타계한 피에르 부르디외에 대해선 "그는 내 절친한 친구다. 그는 문화적 선택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또 "부르디외가 문제로 제기한 세계화가 오늘날 프랑스 지식인들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고 덧붙였다.

르벨 총장은 프랑스사학회와 서양사학회 주최로 19일 서울대 인문대 교수회의실에서 열리는 간담회에 참석하고 각 대학 총장들을 면담한 뒤 23일 출국할 예정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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