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이종휘 우리은행장, 풍림화산의 자세로 순익 1조원 클럽 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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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화산(風林火山)’.

이종휘(61·사진) 우리은행장이 올 1월 창립 111주년 기념식에서 꺼낸 화두다. 중국의 병법서 『손자』의 ‘군쟁(軍爭)’ 편에 나온다.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날쌔게, 머물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공격할 때는 불처럼 맹렬하게, 지킬 때는 산처럼 묵묵하게’.

우리은행은 2008년이 악몽 같은 해였다. 황영기 전 행장 시절 투자했던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서 1조6000억원의 손실이 났기 때문이다. 이 행장이 지휘한 지난해는 9538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은행권 최고 실적이다.

그렇지만 박수를 칠 수는 없었다. ‘원죄’에 대한 부담이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행장은 선언했다.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

그로부터 6개월 가까이 흘렀다. 그에게 우리은행이 풍림화산의 길을 가고 있는지 물었다. “아직 미흡하지만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은행은 올 1분기 4598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 추세면 올해 순이익 1조원 클럽에 복귀하는 게 확실하다. 2007년 이후 3년 만이다.

 ◆풍(風)=군사는 질풍처럼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이 행장은 “올 하반기 기업 구조조정을 날쌔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거래 기업의 부실이 심해질수록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한다. 부담스럽다. 이 행장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행장에 취임한 그는 그해 말 파생상품 투자액을 손실 처리했다. 그리고 책임을 졌다. 연봉에서 7000만원을 반납했다. 그는 이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크다.

“ 부실 자산을 신속히 정리해 시장이 불안해지는 걸 막겠습니다.”

◆림(林)=머물 때는 조용히 있는 게 좋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 행장은 “기업 구조조정을 마치고 나면 내실 성장을 이룰 적기”라고 말했다.

올해 우리은행의 성장 목표는 7%다. 그는 “인수합병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사를 사서 치고 올라가는 전략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 “은행·카드 등의 균형 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부실을 털어내면서 성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불필요한 과당 경쟁도 하지 않으니 판매관리비가 줄었다. 순이자마진(NIM)은 개선됐다. 올 1분기에만 영업수익(매출) 1조6010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지난해 1분기에 비해 174%나 늘었다.

◆화(火)=공격할 때는 불이 번지듯 맹렬하게 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올해 해외 진출에 불을 붙였다. 최근 미국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인도 첸나이에 지점을 설립하고, 브라질 상파울루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중국 톈진(天津)에도 은행을 만들었다. 이 행장은 “국내 영업에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 오는 게 결국 경쟁력 있는 은행”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이사회와 아시아 지역 워크숍을 개최했다.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아시아의 리딩뱅크가 되기 위한 전략회의였다. 앞으로 호주 시드니, 터키 이스탄불,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등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 행장은 “우물 안 개구리로는 경쟁력이 없다”며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산(山)=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해야 한다. 이 행장은 조직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삼는다. 명예퇴직한 지점장을 재취업시키는 데 팔을 걷어붙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거래 기업이 우리은행 지점장을 채용하면 2년간 월급의 절반을 은행이 지원한다. 현재까지 44명이 재취업했다.

“능력 있는 지점장들은 새 일을 찾았다고 좋아합니다. 지점장 한 명이 나가면 신입 행원 3명을 채용할 수 있어 청년고용에도 바람직합니다.”

그는 “나이 든 행원들도 걱정 없이 일하고 젊은 피도 수혈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부하 직원을 챙기는 데 열성적인 그이지만 정작 자신은 연임할 수 없다. 파생상품 투자 손실 때문이다. 그는 “행원으로 입사해 40년간 근무했는데 또 다른 꿈이 있겠느냐”며 “존경받는 선배, 은행장으로 기억되면 족하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우리은행을 큰 산으로 키우는 것이다. 김종윤 기자

글=김종윤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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