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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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식 소매상'이라 자처하는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는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고급한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게 스스로 부과한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도 그래서 태어났다. 특히 경제문제에 있어 대중들과 '난수표' 같은 어휘를 나열하는 학자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보겠다고 한다. 겸양하는 그이지만 결코 얄팍하지 않은 학문적 깊이와 TV 토론 진행, 시사 컬럼 집필로 다져온 펄떡이는 현실감각까지 갖춰 한마디로 '양수겸장'이다. 유씨의 작업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김낙년(동국대·경제학부) 교수가 함께 만났다.

▶사회=『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이후 10년 만에 경제학 책을 썼다.

▶유시민=이번에는 경제학 원론을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접목시켜 설명해 봤다. 본격적으로 경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이전 책들과 차별될 수 있으나 경제논리로 현실을 보자는 취지는 모든 책이 일맥상통한다.

▶사회=경제학과 경제학자에 대한 폄하가 곳곳에 드러나던데.

▶김낙년=내 경우 기성 학문과 참여자에 대한 조롱도 지식 소매상 유시민의 자기 전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시민=그렇게 볼 수도 있을까? 경제학도로서 나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경제학을 조롱한다기 보다 내가 느꼈던, 현실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는 경제학의 한계를 고백한 것으로 이해해달라.

▶사회=그렇다면 그런 경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고 싶다.

▶유시민=모든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경제학만큼 배워서 효용이 높은 학문이 없다. 원래 내가 생각한 책 제목은 『경제학, 이만큼은 알아야 화도 낸다』 였다. 정치·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경제 지식은 필요불가결하다.

▶김낙년=맞는 말이다. 경제를 공부해야 전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진다. 그래야 잘못된 정책이 빚어낸 비용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다.

엉터리 정책 속아서야

▶유시민=한 대권주자는 TV 토론에서 "임기말까지 주가를 3천포인트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주가를 어떻게 어거지로 올릴 것이며, 주가가 오르면 나라가 부자되는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유권자들이 판단하는데도 경제 지식이 필수다.

▶김낙년=아마 주식 투자하는,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그 말 아무도 안 믿을 게다. 사실 신문지상에도 잘못된 경제 개념이 자주 나오지 않는가.

▶유시민=경제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IMF 외환 위기 당시 어떠했는가. 애국심,민족의 역량으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경제학자도 있었지 않았는가.

▶김낙년=그런 때 하는 말이 꼭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더라.

▶유시민=집권당은 초기에 세금 인상과 긴축재정을 펴다가 후반기에 세금을 내리고 재정지출을 늘려 국민이 '경기가 좋아진다'고 느끼게 만들려 한다. 경기순환, 특히 경기악화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이 고질병을 치유하는데 성공한 국민경제는 없다. 시장이 해결 못하는 문제가 많지만 이는 정부가 나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사회=경제 정책을 세우는 정부와 관료의 역할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유시민=새만금 사업을 보자. 쌀 증산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멀쩡한 개펄을 없애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조직·인력을 극대화시키려는 관료들의 의도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회=조세 정의·국민연금 등 예민한 부분도 많이 건드렸던데.

▶유시민=이 책에서 교육문제가 하나 빠졌다. 시장원리로 교육을 설명하면 천박한 논의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교육은 전형적인 경제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지적 자본을 얼마나 축적하고 향후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그렇다면 경제적 관점에서 교육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유시민=예를 들어 자동차처럼 모든 정보가 완전히 통용돼 교사·교수의 능력을 따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이런 비대칭 시장은 제도를 어떻게 설정하고, 인센티브 구조를 어떻게 갖추는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김낙년=옥석을 가릴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데 경제적 사고를 이용하자는 것 아닌가.

▶유시민=맞다. 그렇게 큰 틀로 보아야 하는데 우리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기에 바쁘다. 정치가들은 쩍 하면 "입시 고민 없애겠다" "경제를 살린다"고 내뱉지 않는가. 그 선동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책에 "이런, 이런 말에는 속지 말라"는 예방백신 같은 내용들을 담았다.

경제 마인드 무장을

▶김낙년=우리의 국민총생산(GNP) 60%를 법률·의료·교육 등 서비스가 차지한다. 이 서비스 분야가 완벽하게 시장원리에 따라 돌아가지는 않는다. 서비스의 품질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나 의사가 잘못하면 그 평판을 알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유시민=제도 보완을 위해 어떤 정책 선택이 선이고,악인지를 판단하는데 국민의 경제 지식이 필요하다.

▶김낙년=경제를 제대로 알자는 운동을 벌이는데 유시민씨같은 '지식 소매상'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나름의 대중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새로 나온 경제학 원론 책들은 사례도 풍부하고 쉽게 잘 쓰여졌다.

▶유시민=그러나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 대화가 어려운 분야 중 하나가 경제학이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김낙년=아마도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란 선입견이 있어서 일 게다. 어설프게 투자하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어느 수준에만 이르면 문리가 트이는 것이 경제학이 아닌가 싶다. 그런 부분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사회·정리=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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