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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前간부 김정민씨 또 中서 실종 탈북자 관리 손 놓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유태준(泰俊)씨의 입북 및 재탈북 사건(본지 2월 14일자)에 이어 14일에는 노동당 고위간부 출신의 50대 탈북 귀순자는 중국으로 출국한 지 6개월이 넘도록 소식이 끊긴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출국 후 잠적하거나 납치·체포, 심지어 입북한 사례가 씨를 포함해 2년 새 7건에 이르고 있지만 정부 관계 당국은 이들의 구체적 행적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다 씨의 탈북 행적을 둘러싼 거짓증언 소동까지 보태져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잇따르는 탈북자 출국 파문=관련 단체와 통일부에 따르면 1988년 5월 귀순한 김정민(金正敏·59)씨가 지난해 7월 말 중국을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실종됐다.

金씨는 출국 당시 정부가 발급한 한국 여권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평소 金씨가 북한에 두고온 두 딸을 서울로 데려오고 싶다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金씨가 출국 직후 '프랑스에 있으니 걱정말라'고 전해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 직속 대양무역회사 사장을 지낸 金씨는 황장엽 노동당 중앙위 비서의 망명 전까지 최고위급 귀순자로 간주됐다. 그러나 94년 10월 가정을 꾸린 韓모(44)씨와 불화로 헤어지고, 99년 10월에 문을 연 북한 음식점 묘향각이 경영난을 겪는 등 정착이 쉽지 않았다.

앞서 북한군 간부 출신 신중철(예비역 육군 대령·83년 귀순)씨가 2000년 6월 중국으로 나간 뒤 잠적했으며,'탈북 치과의사'로 알려진 정재광(96년 귀순)씨도 같은 해 출국한 뒤 사라졌다.

지난달에는 딸과 손녀를 데려오려고 출국한 金모씨가 중국 공안당국에 함께 체포됐다.

특히 남수(96년 귀순)씨는 2000년 7월 해외무역을 해보겠다며 출국한 뒤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김일성대 교수 출신 趙모씨는 같은 해 2월 중국 여행 중 괴한에 납치됐다 가까스로 풀려났다.

◇문제점과 대책=매년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는 99년 1백48명에서 2000년 3백12명, 지난해 5백83명으로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다.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탈북자의 해외여행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8명의 담당 직원으로는 1천7백여명에 이르는 탈북자의 정착금 지급과 직장 알선·생활 상담도 벅차다는 것.

때문에 유태준씨가 평양방송에 나올 때까지 그의 입북을 까맣게 몰랐고, 서울 귀환 후에도 오히려 언론을 통해 동정을 파악했다.

외교부는 중국 등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우려해 일반 재외국민과 달리 영사국이 아닌 지역담당 부서에 관련 업무를 떠넘겨 "탈북자들은 한국 국민이 아니냐"는 반발까지 사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거나 사업 실패·애정 문제로 해외로 나가려는 탈북자들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대 제성호(諸成鎬)교수는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들의 해외 여행을 제한하는 게 쉽지 않지만 신변 위협이나 외교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특히 중국·러시아 등 북한 접경국으로 혼자 출국하는 경우 정부가 꼼꼼히 챙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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