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동행 히딩크 감독 이해할수 없는 무분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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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재미있는 우화다. 바다에 사는 게 학교에서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왜 너희들은 밤낮 옆으로 기어다니는가"라고 질타했다. 야단을 친 선생님이 옆으로 기어 자리를 떠났다. 야단맞은 제자들은 선생님도 옆으로 기어가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드컵 부진 뒤 한국 축구대표팀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중 가장 뜨거운 소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애인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박종환 전 대표팀 감독이 "큰 경기에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한국을 우습게 본 행동"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율'과 '방종'은 스포츠판에서 종이 한장의 차이다. 자율은 스스로 훈련과 자기관리를 효율적으로 해 경기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다. 방종은 정해진 규율과 규칙을 위반하는 '일탈'행위를 하거나 자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히딩크 감독은 애인을 훈련장에 대동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선수단 버스로 함께 이동하거나 한 호텔에 투숙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연 히딩크의 이런 행동을 한국과 네덜란드의 문화적 차이로만 봐야 할까. 아니다. 이는 분명 히딩크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다. 유럽과 남미의 어느 나라 감독이 부인도 아닌 애인과 대회기간 중 같은 호텔에 '러브 캠프'를 차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히딩크 감독이 애인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고, 대표팀 관계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양해를 구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이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애인의 숙소를 같은 호텔이 아니라 근처의 호텔로 정하고 그곳에서 만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소한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자율과는 거리가 먼 문화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선수들은 당연히 자율보다 '타율적 지배'에 익숙해 있다. 우리 선수들에게 히딩크의 행위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전지훈련 중 선수들이 훈련과 경기 후 운전까지 해가며 숙소를 떠나기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는 자칫 집중력 저하로 이어져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
속출하는 부상과 저조한 경기력의 이면에는 분명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의 단초에 히딩크의 무분별한 행동이 있다고 생각한다.
히딩크에게 지급되는 엄청난 연봉은 축구협회나 정몽준 회장이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히딩크가 올바른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으면 월드컵 16강 꿈은 끊긴 연줄처럼 우리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기고 멀리 날아갈 것이다. 선생님 게의 야단에 고개를 갸웃하던 제자 게들의 얘기가 그냥 재미있는 얘기로 치부하기에는 한국 축구와 너무 닮았다.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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