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高入배정 취소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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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도권 5개 고교 평준화 권역 가운데 수원·성남·안양·고양 등 4곳의 2002학년도 신입생 배정이 발표 하루 만에 전면 취소됐다. 고교 평준화가 수도권 신도시 지역으로 확대 실시된 첫해의 배정 취소 소동은 교육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다.
직접 원인은 컴퓨터 오류 발생 때문이라지만 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발표한 것은 모두 도교육청의 책임이다. 컴퓨터 배정 작업은 프로그램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에 기본 기술만 가진 업체면 해낼 수 있고 관계자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도 오류를 미리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또 교육청이 이상 유무 점검을 소홀히 하고 발표한 것은 실수라기보다 직무유기에 가깝다. 더욱이 학부모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따라 교육청이 검증에 나서 잘못을 찾아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 아닌가.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고교 배정은 학부모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한때 거셌던 서울 강남 8학군 바람이 좋은 예다. 전국 도시마다 열병을 앓았던 평준화 찬반 다툼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도교육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고교 배정 작업 아닌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업무조차 이처럼 허술하게 처리했다면 다른 일은 과연 제대로 했을지 의심스럽다.
신입생 소집 등 학사일정이 일주일 이상 늦어져 차질이 우려되지만 어떤 경우라도 신입생은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일차 배정 취소에 따른 학부모 불신이나 반발이 증폭되거나 혼란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재배정은 더욱 완벽하게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재배정 소동은 결국 공직자의 근무 기강 해이가 근본 원인이다. 특히 입시행정은 파장이나 후유증이 큰만큼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다시는 이같은 원시적인 행정 착오가 재발되지 않도록 고교 배정 작업 과정의 감시·감독과 점검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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