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통령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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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시작한 지난달 중순부터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 특히 북한문제에 관한 언급이 뉴스에서 빠진 날이 없었다.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하는 발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신중을 요하는 것이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렇다면, 지난 LA 발언으로부터 시작한 노 대통령의 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가.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이 자위수단으로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한 LA 발언 이후 해외순방을 계속하면서 북한 붕괴 불가론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수차례 천명했다. 노 대통령은 폴란드에서 '중국이 돕고 한국이 원치 않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없다'고 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화 철거로 일각에서 불거진 북한 붕괴론을 일축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생각을 반영시키기 위해서 혹 누구와 얼굴을 붉혀야 한다면 붉히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말하며 북한 체제붕괴를 언급하는 미국의 일부 세력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노 대통령의 지속적인 강경 발언이 대통령의 개인적 소신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신중을 기한 일련의 전략적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는 일관성이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 무력행사나 압박, 경제제재를 통한 체제붕괴의 가능성은 배제하자는 것이다. 북한에는 조속한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한편 미국에는 외교적 노력을, 그리고 국제사회에는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국제사회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한국 주도의 평화적 북핵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두 가지 주요한 목적이 보인다. 첫째,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것, 즉 강경 대북정책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둘째, 북한엔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다. 두 가지의 목적이 달성된다면 평화적 해결에 한발 다가서고 노 대통령의 발언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북한 체제문제와 핵문제를 연계시키는 데 반대하면서 미국 네오콘들의 주장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분명하다. 핵 프로그램을 무조건 포기할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북핵문제가 6자회담을 통해 일괄 타결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한.미 공조는 원활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는 북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견 역시 충분히 피력돼 있다. 그러나 북한에 있어 북핵문제는 북.미 간의 현안으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독자적으로 북한의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북한을 단독으로 설득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 행정부와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상당히 좁혀 놓은 측면이 있다. 6자회담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외교적 노력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대북 봉쇄와 경제재제의 수단을 배제시킨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북핵문제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제적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문제가 6자회담을 통해 다자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것이다. 미국을 배제한 독자적 행보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북핵문제는 어느 때보다 미국을 비롯한 당사국 간의 긴밀한 협상과 타협이 필요한 시기에 봉착해 있다. 적극적인 '말' 보다는 실질적 '역할'을 위한 정교한 외교 노력이 절실한 때다.

서창록 고려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