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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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소설가 김승옥이 쓴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탁월한 단편소설의 첫 머리는 거리의 선술집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을 팔고,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점퍼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선술집.
소설에서는 거기서 만난 세 남자의 이야기, 당시 서울의 모습이 지극히 쓸쓸하고 우울하게 펼쳐진다.
그와 같은 선술집은 지금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가지 이름을 가진 거리의 노점들은 성업 중이다.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곳에서 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인사동의 옥수수 호떡집과 기업형에 가까운 포장마차 술집까지. 때로 그 술집들은 집단을 이뤄 대단지처럼 만들 때도 있다. 사람들은 왜 포장마차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분위기가 그럴 듯한 술집과 음식점도 많고 포장마차의 음식값이나 술값이 특별히 싼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불량식품을 몰래 사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꼭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서 먹던 습관의 지속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포장마차와 노점에서 무엇인가를 사먹고, 사는 행위 자체가 일탈적이다. 물론 그 일탈은 사소한 것이며 일상적으로 규격화된 삶의 양식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있다. 그러면서 대단히 안전하다. 포장마차에 앉아 있으면 보통 술집이나 음식점과는 달리 뭔가 자유로운 듯한 기분, 모르는 사람과도 너나들이를 해도 좋을 듯한 느낌이 든다.
즉 포장마차와 선술집과 노점들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장소인 것이다. 접근이 쉽고 떠나기도 쉽다. 게다가 포장마차 자체의 이동성도 탁월하다. 그러니까 포장마차는 답답하고 꽉 짜인 도시 안에 있는 거의 유일한 유목적인 성격을 가진 장소인 셈이다. 그 유목성과 열려 있음이 일반적인 술집,음식점과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와서 사람들이 기꺼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바람에 흔들리는 카바이드 불빛 대신 전구가 빛나기는 하지만,오뎅과 떡볶이와 술과 국수 종류를 파는 포장마차는 도시의 밤 거리에서 어쩐지 따뜻해 보인다. 특히 추운 겨울 밤 종종걸음을 치며 거리를 지날 때 그 불빛과 솟아오르는 김과,모여선 사람들과 음식 냄새는 강렬한 유혹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빛을 찾아 떠도는 주광성 곤충처럼 포장마차로 모여드는 것일 것이다.
도시의 거리는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 피곤함은 육체적인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신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풀어버리기 위해 우리에게는 뭔가 비일상적인 장소와 행위가 필요하다. 포장마차와 선술집과 노점들은 약간 불량기 있는 일탈의 기쁨을 대단히 안전한 방식으로 도시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승옥이 소설을 썼던 때나 지금이나 거리 곳곳에서 번성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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