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앙-지방의 새로운 발전적 협력모형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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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약진하면서 중앙정부와의 관계 설정이 과제로 떠올랐다. 충청권 광역단체장들은 세종시 수정안 폐기를, 야권 시·도지사들은 4대 강 사업 재검토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후보 단일화를 한 지역에는 공동지방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한다. 중앙-지방 간 갈등 구조 이외에도 지방 정부들의 여소야대(與小野大) 현상, 교육 행정의 보수-진보 충돌 등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도 첨예한 갈등 구조가 형성됨으로써 정쟁(政爭)과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15년 전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집권당이 승리한 적이 없다. 서울시장의 경우 집권당 출신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사소한 다툼은 있었어도 극단적으로 대립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선거 직후 대립양상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지만 이런 경험을 살려 현명하고 합리적인 상생(相生) 협력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야당 후보들이 지나치게 정치구호를 앞세워 왔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과거 어느 때보다 진지한 대화와 의견 조율(調律)이 필요한 이유다.

사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은 엄연히 구분돼 있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헌법 117조)하기 위한 것이다. 지역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는 일이다. 그 범위는 ‘법령이 정한 범위’(같은 조항) 안에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런 헌법상의 역할 한계를 지킨다면 충분히 대화를 통해 협조와 조정이 가능하다. 물론 그 한계를 엄격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다. 4대 강 사업만 해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지방정부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국책사업의 구상과 추진은 어디까지나 중앙정부의 몫이다. 더군다나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당장 재정자립도가 낮아 대부분의 사업은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야 가능한 게 현실이다. 정치적 목적을 배제한다면 충돌할 이유가 없다.

특히 교육 정책을 놓고 대립과 반복을 거듭하면 학생들만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학교를 정치투쟁의 장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금 더 배려하고 대화를 통해 신중하게 정책을 조율해 주기 바란다. 교육감들도 자신들의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무상급식도 재정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방정부 내 여소야대 현상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면 고질적인 지방 비리를 방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말 지역주민을 위한 일이냐’다. 자치행정을 하는 것도 지역에 맞는 행정을 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사건건 중앙정부와 대립만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이 떠안게 되고, 총체적 비효율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발전적인 자치행정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