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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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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5일 부산에서 막을 내렸다. 전날 기념촬영을 위해 나란히 앉은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왼쪽부터). [부산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주말 부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정부는 중요한 행사라고 강조했지만 국민이 체감하긴 쉽지 않았다. 재정 운용에 대한 국제적인 흐름이 큰 변곡점을 지났다는 점 외에는 공동성명(코뮈니케)을 읽어 봐도, 그게 그 얘기 같다. 각국의 거물들이 다녀가긴 했지만 우리에게 딱 와 닿는 접점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얻은 경험과 국제감각은 우리의 자산으로 남는다. 이를 토대로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를 치러야 하는 게 남은 과제다. 이번 회의에 주역으로 참가한 이들의 경험을 통해 향후 일정과 의제, 의장국으로서의 위상을 짚어 본다.

6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지난 주말 부산에서 이틀간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오래도록 발언한 탓이다. 이번 회의는 국내에서 처음 열린 G20 장관급 회의였다. 그는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회원국 간의 이견을 조정하며 공동성명(코뮈니케)을 이끌어냈다. 윤 장관은 G20 부산회의에 대해 “모든 것이 완벽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회의가 열렸던 2~3일간 부산이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게 감격스럽다는 말도 했다. 그는 “그리스 등 유럽의 재정위기와 같은 글로벌 이슈를 주도적으로 다루면서 우리가 세계사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강렬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에게 “지식의 빈곤을 절실하게 느낀다. 선배로서 경험을 말하는데, 젊은 시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그때 한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우리가 언제 세계를 상대로 나라를 경영해본 적이 있었던가. 국내 문제에만 매몰돼 바깥 세상은 너무 모른다. 세계의 중심에 들어서기 위해선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인터넷 문화를 보면 좀 걱정스럽다. 인터넷이 편리하겠지만 고민의 깊이와 사유 능력을 후퇴시킬 수 있다.”

윤 장관은 한국이 제안했던 의제인 글로벌 금융안전망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큰 성과로 꼽았다. 자본이 급격하게 들고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동성을 줄이고, 위기가 인근 국가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게 글로벌 금융안전망이다. 그동안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고, 자기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여왔다. 안전장치가 있으면 아시아 신흥국들도 지금처럼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둘 필요가 없다. 결국 아시아의 무역 흑자와 미국의 무역 적자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셈이다.

이런 덕분에 이번 회의에서 선진국을 설득할 수 있었고, G20 차원에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윤 장관은 “글로벌 금융안전망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니 브릭스 국가 등 신흥국들이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윤 장관과 함께 부산 회의에 참석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공식회의와 별도로 이틀 동안 12개국 중앙은행 총재와 개별 면담을 했다. 그 역시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돈 아끼기 위해 자동차 보험을 들지 않고 운전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스럽느냐”는 논리로 설득에 나섰다.

김 총재는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이들의 논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했다. 어느 총재와는 금융정책의 모형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김 총재는 한국은행의 분석 수준을 외국 중앙은행들과 나란히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이겠다고 했다.

“3개월, 6개월 뒤 경제가 어떤 모습일지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달 전, 혹은 석 달 전 통계로 경제를 읽어내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수준을 높이려면 고생 좀 해야 한다.”

국제 흐름을 잘 읽고 따라가야 경쟁력도 생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 총재는 “G20 등의 국제 무대를 통해 의견이 다르면 절충하는 모습을 몸에 밸 정도로 수없이 봐야 한다. 국격이 높아지는 것은 이렇게 잘 보이지 않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G20 부산회의에선=G20은 금융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함께 재정을 쏟아붓자던 1년 전의 합의를 폐기했다. 그 대신 나라 살림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재정 구조조정에 함께 나서기로 합의했다. 정책의 큰 흐름이 달라진 것이다. G20은 재정 건전화 원칙으로 ▶각국 상황에 맞게 ▶차별화된 방식으로 ▶신뢰성 있고 ▶성장 친화적인 조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최희남 G20 준비위원회 의제총괄국장은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고, 금융규제의 시기를 올해 말에서 11월의 G20 서울 정상회의로 앞당긴 점, 한국이 제안한 의제인 금융안전망에 대해 구체적인 표현을 집어넣은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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