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 족쇄풀기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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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제도를 폐지하기로 최종 결정하기까지 청와대 내부에선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선 야당의 지지까지 얻어낼 수 있는 '인기상품'이긴 하지만, 대통령 권력관리의 은밀하고 미묘한 부분을 맡아 온 민정수석실의 현직 검사들을 전원 민간인으로 바꾼다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정수석실은 단순한 대통령의 법률적 보좌기능 이상의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을 통해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해 사실상 보고를 받았다. 경우에 따라 적절한 지침을 제시한 적도 없지 않았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야당이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해 검찰수사를 불신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청와대와 검찰의 연결고리인 민정수석실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특히 청와대는 야당의 정치적 공격에 대한 수단으로 검찰의 내사(內査)나 사정권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때 대통령의 관심사안을 헤아려 검찰조직에 드러나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민정수석실의 고유업무 중 하나였다.
최근 김학재(金鶴在)민정수석은 金대통령의 명을 받아 자진사퇴를 거부하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을 사퇴시키고, 이명재변호사에게 검찰총장직을 맡도록 끈질기게 설득했다.
민정수석실은 이처럼 인사와 관련된 고도의 통치권적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정부 인사를 위한 인사자료 관리 및 검증, 사정기능을 통한 공직사회 기강잡기 등도 민정수석실의 업무다.
대통령의 권력관리와 직결된 이런 미묘한 업무들은 검찰조직을 배경으로 갖고 있는 현직 검사들이 수행하지 않으면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게 현행 청와대 검사 파견제 유지론의 논거였다.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쪽에선 "특히 임기 말 권력누수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검사파견제를 폐지해선 안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진통이 벌어지면서 청와대의 공식 입장도 2일 오전엔 "민정수석실 검사 일부를 민간인사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에서 이날 오후 "검사의 청와대 파견근무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로 바뀌었다.
최종 가닥은 金대통령이 잡았다. 金대통령은 청와대 파견제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현재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시비가 있는 만큼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과감하게 전면적으로 폐지하는게 낫다는 취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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