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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물 이력 공개'로 농업 업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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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때 "오늘이 누구 생일이야. 웬 고깃국"이라는 영화 대사가 검열에서 잘리는 시대가 있었다. 쇠고기를 지나친 부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값싼 농산물만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소비자들은 값싼 농산물이 아니라 친(親)환경의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업도 토지와 노동력만을 생산요소로 하는 1차 산업에서 벗어나 무엇인가 부가가치를 결합해 1.5차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시대적 압박을 받고 있다. 그 농업의 부가가치 창출이란 점에서 경기도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경기도는 전국 축산업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도가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해'축산물 원산지 추적시스템'을 개발했다. 소에게 메모리용 칩(chip)을 부착해 혈통, 축산 농가, 도축과정, 판매 과정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입력하고 최종 소비자가 그 같은 정보를 알고 구매토록 한 것이다.

쉽게 말해 모든 소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이 고유번호에 각종 정보를 입력하고 공개하는 것이다. 이제'한우'와'수입 소'의 구분이 아니라'갑돌이 농장'에서 키운 소가'갑순이 도축장'에서 관리된 쇠고기라는 이름으로 판매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간 축산업은 생산자의 의지가 중간 유통과정에만 위임될 뿐 소비자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생산자를 모르고 물품을 구입해야 했다. 그저 쇠고기는 정육점에서 파느냐, 대형 마트에서 파느냐로 구분될 뿐이었다.

그러나 새 정보기술의 개발은 축산업에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일부 축산물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이 전 농가에 자연스럽게 확산된 것이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품질 경쟁력에서 뒤지게 되자 모든 농가가 앞다퉈 축산 정보를 공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육종 개발의 연구, 친환경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농가의 노력 등 축산업 전체에 활력과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정보 공개(information sunshine)가 어둠이 짙게 내렸던 한국의 축산 농가들에 새로운 햇빛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생산이력제 공개시스템은 지역혁신에도 좋은 사례일 것이다. 사업출발 단계에서부터 지역 축산업자의 문제의식, 지역 대학의 연구,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라는 삼두마차가 협력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지역 현안을 연구해온 대학에 대한 축적된 신뢰도 중요했다. 경기도의 사례는 이처럼 지방의 활력은 중앙 지시가 아니라 지역에 내재화된 상호 신뢰와 자생적인 상호 협조 속에서 자라난다는 좋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