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속보이는 '개각 예고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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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7일과 28일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장관 교체 여부를 알아보느라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대폭 개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개각에 대한 언급은 금기(禁忌)사항이다. 장관에 대한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측근일수록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굳이 대통령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개각을 예고하는 순간 공무원들의 동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 장관이 취임하면 무슨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갈지 모르는 상황인데다 어느 정도의 후속인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연히 일을 벌여 좋을 것이 없다. 장관 결재도 미루는 것이 다반사다.

때문에 개각은 비밀리에 추진한다. 당장 내일로 예정돼 있어도 오늘은 입을 다무는 게 개각이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새로 발탁할 사람이 외부에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난 27일 공개적으로 개각을 예고했다.

28일에는 "누구는 유임이고, 어느 자리에는 누가 간다"고 공개해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과거 어떤 정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대통령의 허락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의 오보를 줄이기 위한 '친절'로 보기에는 석연찮다.

최근 언론을 장식해 온 것은 각종 비리 게이트에 연루된 청와대 수석과 국정원 관계자, 대통령의 친인척 문제였다.

야당은 대통령 내외까지 공격했다. 그러니 야당이 '숨은 의도'를 의심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게이트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물타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정계개편설이 나오는 미묘한 시점인 28일 'DJP회동(29일)'까지 발표했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기사가 신문에 넘쳐나게 된 것이다. 이를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개각은 통상 국면전환을 위한 카드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이러한 이벤트 만들기로는 며칠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비리 게이트의 문을 닫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김진국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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