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 롤러코스터 ‘서울시장 개표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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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으로는 처음으로 재선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 시장이 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하절기 수방 및 시민건강 대책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이긴 사람은 “사실상 패했다”고 했고, 진 사람은 “선거는 졌지만 국민은 승리했다”고 말했다. 선거 사상 가장 피 말리는 명승부로 불린 6·2 서울시장 선거 ‘15시간의 개표 드라마’는 승자를 겸손하게, 패자를 당당하게 변모시켰다.

3일 오전 8시50분 민선 서울시장 첫 재선 기록을 세운 한나라당 오세훈(49) 당선자는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장수들을 모두 잃어버린 ‘대표 장수’가 된 느낌입니다”며 눈물을 보였다. 밤새 개표 상황을 지켜보느라 얼굴도 까칠했다. 불과 15시간 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앞서던 오 당선자가 ‘지옥 문턱’을 넘나드는 악전고투를 벌이리라 예상한 사람은 여권 내에 거의 없었다.

◆0.2%포인트=2일 오후 6시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47.4%(오 당선자) 대 47.2%(한명숙 민주당 후보). 0.2%포인트 차의 초박빙이었다. 직전까지 ‘당선 인터뷰’를 여의도 당사에서 할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의 선거 캠프에서 할지 논의했던 오 당선자의 참모들은 말을 잃었다. 같은 시각 여의도의 한 후보 캠프에선 탄성이 터졌다. 한산했던 캠프에 순식간에 취재진 100여 명이 몰렸다. “이겼다”는 구호가 꽤 오래 이어졌다.

개표 초반 오 당선자가 10%포인트 이상 앞서나가자 참모들은 다시 오 당선자의 캠프 방문 시간을 논의했다.

◆역전=하지만 오후 9시43분, 한 후보가 역전에 성공했다. 한 후보 캠프가 들썩였다. 오 당선자 캠프에선 소동까지 생겼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욕설 섞인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러 사람이 뜯어말리면서 다툼이 잦아들었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한나라당 장광근·진수희·조윤선·김동성 의원 등이 개표방송을 보려고 캠프에 왔다가 어두운 얼굴로 하나 둘 자리를 떴다.

집에서 개표를 지켜보던 한 후보는 두 시간 이상 승세를 이어가자 밤 12시5분 여의도 캠프에 나왔다. 지지자들이 “서울시장 한명숙”을 연호했다. 한 후보는 인터뷰에서 “민심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 후보는 서울광장을 찾았다. 지지자들은 ‘오세훈 방 빼’라는 피켓을 흔들었다.

3일 오전 1시, 캠프를 찾은 오 당선자는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한 뒤 권영세·권영진 의원 등과 잠시 TV를 보다 공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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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역전=이후 세 시간 동안 롤러코스터처럼 아슬아슬한 랠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오전 4시16분 오 당선자가 재역전에 성공했다. 개표가 늦었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에서 막판에 표가 쏟아진 결과다. 공관에 있던 오 당선자의 휴대전화로 ‘역전 시작됐어요’라는 조윤선 의원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35분 뒤 ‘1만 표 이상 차이’라는 메시지가 다시 들어왔다. 한 후보를 약 2만 표 차이로 따돌린 오전 6시에 오 당선자는 캠프에 다시 왔다. 투표 종료 14시간25분 만인 8시25분 당선이 확정됐다. 표 차이는 0.6%포인트(2만6412표).

서울의 구별 득표율에서 오 당선자는 강남 3구에서만 12만여 표를 더 얻는 등 8개 구에서 이겼다. 하지만 나머지 17개 구에선 한 후보에게 밀렸다.

글=강주안·허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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