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수수료 인상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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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점을 운영하는 河모(33.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씨는 얼마 전 거래은행에 들렀다가 가계수표책을 받으며 내는 수수료가 2천5백원에서 1만원으로 갑자기 네배로 올랐다는 말을 들었다.

한달에 1~2권밖에 쓰지 않기 때문에 권당 1만원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런 점을 악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은행들의 수수료 인상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평균 잔액 10만원에 못미치는 통장에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조흥은행은 1천원이던 통장 재발급 수수료를 2천원으로 올렸다.

없던 수수료가 새로 생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미은행은 통장 분실 등 사고 신고를 받는데 1천원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고 외환은행은 자기앞수표를 조회해주는 데 장당 1천원을 새로 받고 있다. 예금주 명의변경(외환.하나)이나 개인신용조사(한빛) 수수료도 새로 생겼다.

그러나 은행들은 아직 수수료가 원가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이 6조3천억원으로 전년보다 35% 늘었지만 이 중 이자와 비슷한 신용카드 수수료가 79%(5조원)로 대부분이며, 일반 수수료 비중은 높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개인고객 담당자는 "고객의 반발이 심하지 않은 항목부터 손대다 보니 아직 원가에 못미치는 서비스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특히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이익을 내기 위해선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

전문가들은 그러나 "손대기 쉽고 고객이 쉽게 거부하지 못하는 가계금융 관련 수수료 인상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수수료에만 매달리지 말고, 투자금융 업무 등 외국계 은행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영역에 적극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통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내릴 수 있는 수수료는 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예컨대 송금수수료는 은행전산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던 때와 똑같이 지역.금액별로 최저 5백원에서 최고 7천원까지 받고 있다는 것. 금융연구원 이재연 박사는 "체계적인 원가분석을 한 뒤 이를 토대로 고객이 납득할 수수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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