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리프킨의 쇠고기론과 도올의 똥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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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도올 김용옥이 TV강의라는 멍석에 오르기 시작한 첫 계기는 5년 전 SBS '명의(名醫)특강'이었다. 강연 자체가 언어의 홍수였지만, 강연의 첫 주제부터 질펀한 똥 타령이었다.

그 때문에 강연을 묶은 책 『건강하세요1』(통나무)의 제1장도 '똥과 건강'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게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인들의 대변량이 절반으로 줄어왔다는 별난 정보다. 한데 그게 성인병과 내과질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게 한의(韓醫)도올의 진단이다.

"미국 사람들이 똥을 그냥 적게 싼 게 아니라 섬유질 대신 우유제품.육류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글쎄다. 코네티컷주를 표본집단으로 했다는 미국쪽 통계에서 밀리기는커녕 되레 한수위가 아닐까 싶은게 한국사회일 게다. 지구촌에 유례 없다는 근대화 속도만큼 식생활 변화도 극적이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똥타령은 지난 주에 소개했던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때문이다.

리프킨은 책에서 '쇠고기 섭취를 끊는 인류학적 결단'을 인상 깊게 촉구하고 있지만, 그가 육류 섭취와 대변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았다면 당연히 대서특필했으리라 싶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그 책이 미국에서 선보였을 때 '근거 약한 푸드 호러소설'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이 일부 있었다.

도덕적 기준을 내세운 '쇠고기 반대 십자군 전쟁'이라는 조롱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출간 4일만에 재판을 찍었다는 걸 보면, 리프킨의 문제제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게 분명하다."훌륭한 식문화 전통을 가진 한국이 서구를 닮아가는 게 안타깝다"는 리프킨의 말도 그래서 여운이 남는다.

어쨌거나 『육식의 종말』에는 인류사에서 소가 얼마나 신성한 동물이었나를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지만, 농경사회 한국의 소란 살림 밑천이자 대들보이지 않았던가□ 또 인간과 정감을 나누는 듬직한 가축이기도 했다.

시인 김용택 얘기지만, 그의 산문집 『섬진강 이야기』의 이런 대목을 보자. "(예전)우리 집에서 팔려나간 소치고 눈물을 안 보인 소가 없었다.

한번은 잘도 먹인 큰 암소를 팔게 되었는데, 동구길을 벗어나면서 소가 어찌나 뒤돌아보며 큰소리로 울고 눈물을 흘리던지 나와 아버님도 울어버린 적이 있었다.

아버님은 '이 놈의 소 다시 키우나 보라' 하셨지만 또 소를 사오시곤 했다."(30쪽)또 하나의 문제는 그 소를 요즘 시골에서 과연 어떻게 사육하는가 - 알고 보면 그만큼 지독한, 그리고 조직적인 동물학대도 드물다.

『몽실언니』의 권정생 선생과 함께 우리 시대 주류의 삶과 거리를 둔 채 시골에서 사는 귀인(貴人)인 전우익 선생의 신간 『사람이 뭔데』에도 마침 소 얘기가 있다. 수지타산을 위해 하루 1㎏씩 불리기를 목표로 억지로 먹이는 소는 알고 보면 항생제 주사와 약물에 평생 중독이 된 상태다. 인공수정은 기본이다. 다음은 큰 울림을 주는 그의 천지조화론이다. (60쪽,114쪽)

"전에 암소가 암내를 낼 때는 음부가 퉁퉁 부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고, 화답하는 수소의 소리로 동리가 다 떠들썩했습니다. 그게 곧 성교육이기도 했지요. 요즘 현대식 축사의 암소는 암내낼 때 소리 한번 못지르는 바람에 발정기를 놓치기 일쑵니다. 암수 덩그어 밴 송아지와 인공수정 송아지 어느 쪽이 천지조화에 맞을까요?"

조우석 <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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