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방송 본방송 개국 또 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정치권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MBC.SBS를 사실상 위성방송의 지상파 TV프로그램의 재송신 대상에서 빼기로 하고 지역 방송사의 편을 들었다. 양쪽이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위성방송측이 이에 불복할 경우 상황이 더욱 꼬일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디지털위성방송(사장 康賢斗)은 본방송 개국을 3월 1일에서 6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위성방송측은 "6일로 예정된 개국 기념행사일과 본방송 개시일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방송을 앞두고 방송시스템 운영과 콘텐츠 확보 등에 문제가 생겨 본방송을 연기하게 됐다는 주장이 위성방송측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학계와 방송계에선 위성방송측이 사업권을 딴 후 세 차례나 출범을 연기하는 등 내부 운영에 문제가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위성방송 관계자는 "셋톱박스의 최대 공급업체인 휴맥스가 수신제한 시스템(CAS)의 기술 기준을 제때 맞추지 못해 위성방송 가입자에게 수신기를 설치해줄 때 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은 케이블TV가 초기 정착에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수신기 보급의 차질이었다는 점에 비춰 눈여겨볼 대목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위성방송에 프로그램을 공급할 방송채널 사용자(PP) 중 일부가 본방송 개국에 맞춰 방송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위성방송측과 지역 방송사들이 함께 운영키로 한 '슈퍼스테이션 채널'은 지상파 TV프로그램의 재송신을 둘러싸고 양쪽이 갈등을 빚고 있어 출범 자체가 어려운 형국이다.

'농어민 채널'도 사업권을 공동으로 따낸 두 사업자간에 통합법인 설립이 안돼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밖에 영화의 경우 외자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벤처 채널 등도 개국 일정이 불투명하다.

한 방송계 인사는 "위성방송이 위성방송에만 단독 공급되는 프로그램 확보에 실패해 케이블TV의 재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방송 시스템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위성방송측은 "가입자에게 3월 한달 무료 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를 '판매촉진 차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로그램을 공급받아 위성으로 송출하는 방송 시스템과 요금 부과 등을 위한 수신료(시청료) 징수 시스템을 통합 운영하는 것은 일러야 4월에나 가능하다.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PP들은 "4월의 시청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6월에 수신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수입은 없고 인건비와 시설.위성사용료 등 고정비 지출이 계속되고 있어 일부 PP가 본방송 출범 후 도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성방송측의 방만한 운영도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1백억원의 광고비 지출을 적절하게 집행하지 못한 것과 수신료 징수 시스템을 2,3월에 수동 점검하면서 드는 인건비 부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당초 2001년 말 개국을 목표로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집행한 광고비 1백억원 중 적어도 60억원은 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 위성방송 안팎의 지적이다.

위성방송 고위관계자들은 "3월 1일 개국은 3.1절과 겹쳐 피했다. 기술적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개국 이벤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국을 연기한 것이다. 콘텐츠 차별이 쉽지 않지만 기존 방송사와 20%정도의 차별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통합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며 PP의 개국에 큰 문제는 없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또 위성방송측은 "셋톱박스 문제는 다음주 중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수신료 징수시스템의 경우 약 3개월간 PP들에 정액을 지급한 후 나중에 소급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신방과 교수는 "위성방송측의 자본금 중 58%(1천7백여억원)가 국민 돈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자금 운영을 엄격하게 했을텐데 KT.KBS 등 공기업이 주축이 된 기업이어서 방만한 광고비 운영 등 '도덕적 해이'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기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